과거 국정원의 불법도청을  지시했거나  관여한 인사들을 수사하고 형사처벌해야 할 검찰 앞에 놓인 험로(險路)가 만만치 않다.

    도청을 조직적으로 `자행'한 미림팀 관계자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고 국정원의 도청이나 기밀유출 사실을 입증할 물적 증거는 대부분 폐기됐으며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 공소시효 때문에… =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1차 미림팀은 요원 7명이 1991년 9월∼1993년 7월 사이 활동했고 YS시절 재건된 2차 미림팀은 4명의 요원이 1994년 6월∼1997년 11월 사이 활동했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상 도청의 공소시효는 5년(현행법은 7년으로  상향조정), 국정원직원법상 비밀누설의 공소시효는 7년, 형법상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법적으로 미림팀 관여인사들은 처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DJ 정부 시절 합법적 감청을 하다가 일부 이뤄진 불법 감청에 비해  더  죄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YS 정부 시절의 조직적 도청범죄는 이미 법망을 빠져나갔다.

    하물며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이나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시절의 도청 가능성은 처벌은 말할 것도 없고 진상규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과거 5.18특별법 처럼 공소시효를 중단시키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당시 내란죄 사범인 전두환ㆍ노태우씨를 처벌하려는 법도 헌재에서  1표 차로 겨우 위헌을 면했던 점을 감안하면 도청 처벌 특별법 제정방안은 더 어려워 보인다.

    ◇ 물증이 모두 폐기돼서… = 공소시효 범위 내에 있는 전직 국정원장은 DJ정부 시절의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 건 전 원장이다.

    이들 밑에서 차례로 국내담당 차장을 역임한  신  건-엄익준(작고)-김은성-이수일씨와 기조실장을 맡았던 이강래-문희상-최규백-장종수씨도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참고인이든 피의자든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물증이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는 게 큰 문제다.

    국정원에 따르면 2002년 3월 불법 도청을 전면 중단하면서 도청에 쓰인  장비는 모두 폐기됐고 과거 감청 자료도 제작한 지 1개월 내에 매번 소각됐다.

    국정원도 5일 발표에서 "과거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여야 대선 후보 누가  어떤 도청을 당했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을 용의도 있다"고 한 것은 "국정원을 아무리 뒤져봐도 더 이상 자료가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 기억이 안나서…입을 다물어서… = DJ 정부 시절 도청은 YS  시절처럼  팀을 구성해 조직적으로 한 게 아니라 합법적 감청 중간중간에 불법 도청을 끼워넣는  방식이었다는 게 국정원 설명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감청의 진상을 명확히 파악하려면 당시 감청자들의 기억을 살려야 하는데 합법적 감청을 하면서 불법적인 감청도 했기 때문에 합법과 불법이  뒤섞여 기억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림팀의 핵심 관계자인 오정소 전 차장은 `상부라인'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내가 다 안고 가겠다.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말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오씨가 이런 식이라면 그의 `상부라인'이라는 의혹을  받는  이원종-김현철씨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이 검찰에 나온다 해도 피의자로서  `헌법에 보장된'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천용택 전 원장도 국정원 조사에서 공운영씨의 녹취보고서를 회수해 읽었던  것으로 파악됐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고 한다.

    그 외의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들이 처벌 가능성을 감수하고 검찰에 나와  진상규명에 협조하며 입을 열지는 미지수다.

    ◇ 국가적 보안 사항이라서… = 국정원장이 보안상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자료 일부를 검찰에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정원은 현직 18명과 전직 18명, 일반인 4명 등 총 40명을 조사했으면서도 5일 발표에서 오정소ㆍ공운영씨 외에 도청에 관여한 인사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또 국정원직원법상 전ㆍ현직 국정원 직원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술  또는 증언을 하려면 사전에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있다.

    물론 국정원장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나 군사ㆍ외교ㆍ대북관계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아닌 한 허가를 거부하지 못한다.

    앞서 재미교포 박인회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과정이나 공운영씨 자택에서  274개의 테이프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검찰로서는 국정원과의  계속적인 수사공조가 필요하다.

    검찰은 검사 출신인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 수사의 애로와 국가정보기관의  사정을 절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