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철, 잘 마르지 않는 빨랫감처럼 몸도 무겁고 기력이 없다면 진한 육수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도가니탕의 맛에 빠져보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한여름에 웬 도가니(?) 하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덥다고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일시적인 더위 해소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몸에 이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한여름 더위는 몸 안의 단백질과 비타민C 소모를 늘려, 여름철에는 꼭 양질의 단백질과 영양소 많은 음식으로 몸을 보호해야 한다.
 도가니탕 한 그릇은 만성피로에 식욕마저 떨어지기 쉬운 여름철, 다시말해 여름을 타는 이들에게 둘도 없는 보약이다.
 도가니는 소의 무릎과 발목의 연골 주변을 감싸고 있는 특수한 부위로 삶아 놓으면 투명해지는 젤라틴(아교)을 주성분으로 갖고 있다. 도가니탕이 몸에 좋은 이유 역시 단백질 덩어리인 바로 이 젤라틴 성분 때문이다.
 소의 뼈와 살에 대한 분류는 자그마치 130가지가 된다고 한다.
 음식의 재료로 소는 꼬리부터 머리까지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소뼈와 각종 소고기 살을 이용해 만든 탕은 이미 우리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중 소 한마리에 1㎏도 안되는 도가니는 그 옛날 서민들에게 구경조차 하기 힘든 음식 재료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소뼈와 고기를 함께 은근히 고아 만든 도가니탕은 곰국의 일종으로 단백질과 칼슘 등이 풍부해 환자들의 원기회복을 돕는 대표적인 보양식으로도 손꼽는다.
 20년 손맛을 자랑하는 이모의 대를 이어 도가니탕만을 전문으로 끓인 이정미(43·맷돌식당 대표)씨는 “도가니의 쫀득하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엄선해 정성껏 고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매일 새벽 남편과 함께 서울 독산동 도축장에서 도가니를 직접 엄선해 온다.
 도가니는 비육하는 소가 아닌 밭에서 일을 하는 한우의 것이 최상품이다. 하지만 가격도 가격이지만 전통 한우를 찾기조차 힘든게 현실이다. 이씨는 장시간 냉동 보관된 도가니가 아닌 도축한지 24시간 된 국산 소의 도가니를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최근 육류 소비가 줄어 소의 도축량도 급격히 감소, 1마리에 4인분 정도 나올까말까 하는 도가니를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 도축장의 단골인 이씨의 20년 노하우가 없었다면 아마도 누런 빛을 띠는 전통 도가니의 맛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도가니는 지방과 심줄을 제거하고 하루 정도 사골과 함께 푹 삶는다. 이때 부재료는 사골로 쓰이는 우족외에 아무 것도 넣지 않는 다는 게 이씨만의 특별한 맛의 비밀이다. 도가니 특유의 고소한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맛 때문에 이씨의 식당은 10년 지기 오랜 단골이 많다.
 이씨는 또 도가니를 삶을 때 손님 따라 삶는 정도를 달리 한다.
 단지 손님 취향에 따라 도가니를 삶는 정도를 달리 할 뿐, 20년 세월이 함께 녹아 있는 솥 단지 안에 마를 날 없는 진한 국물 맛은 한결 같다. 도가니는 쫀득쫀득 씹히는 맛을 좋아하는 젊은층에는 좀더 센 불로 빨리 끓여 내야 하고, 볼 살이 없고 이가 약한 노인에게는 약한 불로 좀더 푹 삶아 씹게 좋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끼 음식을 만들기 보다 보약을 다리는 정성이 없으면 도가니의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없다”는 이씨의 고집스런 맛의 철학이다.
 뽀얀 국물에 신선한 파만으로 양념을 더한 도가니탕의 맛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다.
 그리고 양념을 하지 않고 사골 국물에만 끓여낸 도가니는 식혀서 갖은 야채와 버무리면 술안주로도 일품이다. 도가니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신선한 야채와 어우러져 식욕을 돋군다.
 특히 도가니는 지방질이 적은 단백질 덩어리로 식어도 굳지 않고 젤리같이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있어 칼로리에 예민한 여성들도 즐겨 찾는다. /지건태기자 blog.itimes.co.kr/gunt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