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무기로 일본시장 공략
‘e-상인’들이 현해탄을 넘나들고 있다. 전통적 ‘보따리상인’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하늘로 바다로 현해탄을 넘나들었다면, 이들 ‘e-상인’들은 인터넷을 무기로 현해탄을 넘나들고 있다. 이들에겐 무거운 보따리도 없으며, 비행기 표나 배 표도 필요 없다. 일본어로 된 웹사이트 하나 열어놓고 세계 최대 시장의 하나로 꼽히는 일본열도를 공략하고 있다.
아직은 그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가로막고 있는 장벽 또한 만만치 않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무한한 잠재력’을 예찬하고 있다.

#. 경수협 회원사들, 새로운 시도에 나서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중기센터 내 한 모임방. 도내 20개 제조업체들로 구성된 경기도수출기업협의회(회장 유인기·(주)코브 대표·이하 경수협) 소속 8개 기업이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로 뜻을 모았다. 각각의 기업들이 제조한 제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일본 시장을 공략할 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
일단 8개 업체가 공동출자해 오는 8월 께 출범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아울러 개인이든 법인이든 합류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문호를 열어두기로 했다.
새로 출범할 법인은 인터넷을 통해 소속 기업들의 제품을 일본 시장에 직접 판매하게 된다. 바이어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자는 것이다.
취급 품목도 매우 다양하다. 공동출자 회사인 (주)TNI의 재생 카트릿지, (주)인트라니즈의 진공포장기 등 무엇이든 내다 팔겠다는 생각이며,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갖게 된 데 대해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국내 제품은 높은 품질에 값이 싸다. 이를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기술력을 통해 일본의 소비자들을 직접 발굴, 판매하기로 했다. 이미 실험은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 ‘지즐’의 성공적인 실험
경수협 소속 8개 회원사들이 이날 채택한 ‘성공적 실험 결과’를 낳은 기업은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에 자리잡고 있는 지즐인터내셔널(대표 이정호· 33). 지난해 3월 출범해 이제 겨우 창립 1년을 막 넘긴 회사다.
이 회사가 일본에 내다팔고 있는 상품은 택배용 골판지 박스다. 대표 이정호씨 역시 취급품목을 얘기하면 “남들이 다 웃고 만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이 회사는 “남들이 다 웃고 마는” 골판지 박스 한 종으로 그 새 2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일본의 거래처만도 4천여 곳에 이르며, 요즘 들어서는 한 달 평균 매출이 1억5천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덩치 큰 대기업에 견준다면 보잘것 없는 실적이겠지만, 1년 남짓한 기간에 채 5명이 안 되는 식구, 전적으로 인터넷에 의존한 일본 시장 공략 등을 감안하면 꽤 의미있는 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의 이같은 실적 덕분에 국내의 영세 골판지 박스 제조 업체 서너 곳이 덩달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점도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다.
#. 국경을 넘으면 새 길이 열린다
지즐이 1년 전 일본으로 방향을 튼 데 이어, 경수협 소속 몇몇 기업들도 잇따라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e-상인’들은 왜 그토록 현해탄을 넘으려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지즐을 비롯한 경수협 회원사들이 일본으로 눈을 돌린 가장 큰 요인은 일본의 전자상거래 수준이 한국보다 아직은 낫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사용료의 인하와 조밀한 인터넷 망 구축으로 일반 사용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기업들의 인터넷 활용 수준은 낮은 편이어서 공략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시장 규모가 크다는 점도 꼽힌다. 세계 정상 수준의 경제력에 인구는 한국의 세 배 가까이 된다는 점에서 ‘북적대는 한국시장’ 보다 매력적이라고 한다.
‘북적대는 한국시장’의 치열한 경쟁상황도 이들의 발길로 일본을 향하게 했다. 국내 시장에서 제조가 아닌 판매 위주의 기업들은 ‘거의 모든 조건이 비슷한’ 업체들끼리의 피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정 물건을 파는 것이 장사가 된다 싶으면 누구나 그 시장에 뛰어들어, 시간이 갈수록 이윤율은 하향평준화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대일본 무역 경험담을 올리고 있는 아이디 ‘콜드웰’(coldwell)씨는 “한국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사람에게 일본시장은 대략 1-2년 정도의 시간을 주고 있다“면서 ”이 1-2년을 적극 활용해, 수출해서 돈도 벌고 보람도 얻자”고 설파하고 있다.
#. ‘e-상인’들의 세 가지 무기
이들 e-상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인터넷이다. 거꾸로 말하면 활짝 열린 인터넷 세상이 e-상인이라는 새로운 ‘온라인 보따리상’들을 탄생시킨 셈이다.
한국인이 미국 사이트에서 책을 사고, 중국인이 한국 사이트에서 한류연예인 씨디를 구입하는 세상에, 국내의 경쟁력있는 상품을 해외에 내다파는 일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한국은 인터넷에 관한 한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어떤 물건이든 웹사이트 하나만으로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주문도 받을 수 있는 터에 굳이 ‘북적대는’ 한국 안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소비자들을 집적 설득·공략할 경우 바이어에 휘둘릴 일도 없게 되며, 가격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지속적 체계적으로 소비자들을 관리함으로써 시간이 흐를수록 영업기반도 확대·강화된다는 것이 ‘지즐’의 경험담이다.
셋째, 힘을 모으면 강해진다는 평범한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는 것이야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지만, 문제는 높은 배송료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개미군단’인 ‘e-상인’들은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상품을 따로따로 일본 현지에 보낼 경우 막대한 배송료가 들지만, 지즐 측이 매 주 몇 차례씩 오사카로 보내는 컨테이너를 이용함으로써 상당한 비용을 절약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현지의 보관 및 물류 비용 역시 ‘개미군단’들이 함께 확보한 창고와 배송망읗 활용할 경우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즐’을 비롯한 경수협 소속 회원사들의 이같은 시도는 확실히 새로운 데다, 국내의 영세한 제조·판매업체들에게 또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시도가 제대로 건강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본 현지의 인프라 구축이다.
비록 ‘지즐’측이 오사카에 작은 창고와 현지 사무소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의 개인 또는 기업들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체 물량만을 소화하는데도 버거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향후 경수협 회원들의 온라인 무역회사가 출범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가장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문제는 ‘수출이 애국하는 길’이라며 정부가 다양한 수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e-상인’들의 이같은 온라인 수출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e-상인’들이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고 경험하면서’ 복잡한 수출 과정을 이해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인터넷. 그 인터넷을 활용해 국경을 넘나들며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e-상인’들. 그들의 ‘온라인 월경(越境)’은 극심한 불황과 실업자난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송경호기자 blog.itimes.co.kr/keisong
 
#.인터뷰 -지즐인터내셔널 이정호대표(33)
- 어떻게 화성시에 자리잡게 됐는가.
▲ 온라인 무역을 하기 때문에 장소는 상관없다. 다만, 이 근처에 골판지 박스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 일본시장도 경쟁이 만만찮을텐데 어떻게 뚫었는지.
▲ 상식이지만 국경을 넘으니 가격에서 자유로워졌다. 국내에서는 없었던 가격경쟁력이 생겼단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웹사이트와 이메일, 팩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업체들을 공략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4천여개 고객업체를 확보할 수 있었다.
-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지.
▲ 정보마케팅 능력이 주효했다고 본다. 높은 수준의 정보통신 기술력을 활용, 수없이 널려있는 다양한 정보를 가공, 수집해 고객이 우리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본다.
- 현지법인 설립과 물류창고 및 현지인력 확보 등 비용도 꽤 많이 들었을텐데.
▲ 사실 그 부분이 어려웠다. 실패를 무릅쓰고 여러 곳에서 자금을 빌어 과감하게 투자했다. 덕분에 비슷한 일을 하는 업체들이 활용하기도 해 보람도 꽤 있다.
- 정부나 자치단체에 바라는 것은.
▲ 당연한 얘기지만 좀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으면 한다. 경쟁력이 있는 이런 모델이 활성화되면 수출도 늘고, 고용창출도 되고, 영세제조업체들도 살고,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영세한 기업이나 개인이 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나 지자체가 해줬으면 좋겠다. /송경호기자 (블로그)keisong
 
<사진설명>일본 오사카에 자리잡고 있는 지즐인터내셔널의 현지 물류창고에서 현지 직원이 물건을 관리하고 잇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