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물러가면서 흑산 앞바다에서 시작하는 조기잡이는 위도

칠산어장을 거쳐 4월 하순부터는 연평도로 북상했다. 이들 어장들은

성어기이면 수백수천의 어선들이 집결 일대 파시를 이루었었다. 지금은

여간해서 볼 수 없으나 파시란 고기가 한창 잡힐 때 바다에서 벌어지는

생선시장이다. 그러나 단순히 어획물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오고가는

돈줄로 인해 자연히 흥청대기 마련이다. 밤이면 만선의 어선들로 불야성

『어부는 조기떼를 따르고 술집 아가씨는 어부를 따른다』는

말이 있을 만큼 뭍에서 건너온 작부들의 교태도 이때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연평도는 우리나라의 3대어장으로 불릴 정도로 조기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병자호란때 명나라로 도피중이던 임경업 장군이 연평도를

거쳐가면서 엄나무 발을 쳐서 하룻밤에도 수천마리씩 잡도록 가르쳐준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도 연평도의 조기잡이는 성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연평도의 조기잡이가 나온다. 즉 『봄과

여름에 여러곳의 고깃배가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에서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 연평어장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멀리 동중국해에 나가

동면기의 치어까지 훑어 올리는 것도 그렇고 해양 오염과 회유로의 변동

등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한다. 여기에 연일 남북한의 함정 대치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을 만큼 북한과의 지척에 있는 수역인 것도 이유의

하나이다. 그래서 한때 불리던 『눈물의 연평도』라는 유행가

제목도 격에 맞는다 하겠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의 행정구역 명칭인 송림면을 연평면으로

개명하리라 한다. 돌이켜 보면 송림면이란 명칭은 우리나라의 근대사

만큼이나 운명이 기구하다. 송림면은 해방 이전까지 황해도 벽성군의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옹진반도 전체가 옹진군이

되면서 옹진군 송림면이다가 휴전후 육지면이 떨어져 나가고 연평도만

홀로 남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송림이란 이름은 역사의 유물이었다.

 면 이름의 개명과 함께 웃음의 연평도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