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지역 학생들은 바로 다음날 전인천학생의용대를 자발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인천이 함락되기 전까지 인천에서 치안유지활동을 벌였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을 안내하기도 했고, 학생 선도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1950년 12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이들은 학도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꿔 부산으로 향했고, 이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쟁터로 향했다. 일부는 해병대원이 되고, 일부는 보병이나 통신대원이 됐다. 그렇게 군인이 된 14∼18살 소년 3천여명 중 20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많은 학생들이 다쳤다.
 세월이 흘러 1996년 12월 환갑을 훌쩍 넘긴 이경종씨는 친구들의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들 규원(전 인천시의원)의 설득으로 ‘인천 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었고, 이후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옛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1주일에 한사람씩 만나기로 다짐하고 지난 9년간 300여명을 만났다. 당시 학도의용대 연대장인 이계송씨를 비롯해, 부연대장 정대연, 국방부 청훈국인천파견대장 임희철 대위 등이 빛바랜 사진을 내놓았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렇게 모은 500여장의 사진을 확대해 직접 손으로 사진설명을 적었다. 지난 2000년 6월 인천시청에서 첫 사진전을 여는 등 4차례에 걸쳐 전시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집에 쌓아놓기만 하면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고, 과거는 그저 지난 일로 그칠 것만 같아 상설전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12월18일 결실을 맺었다. 신포동 신포시장 버스정류장 플라자약국 3층에 작은 전시관을 마련했다.
 ‘인천학생 6·25참전관’에는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지만, 어린 소년의 티를 채 벗지못한 의용대원들이 빛바랜 사진으로 나마 모여있다.
 이씨는 “96년 정부에서 6.25 참전 유공증을 줬다. 받을 때는 무척 기뻤는데 유공증은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아 허탈한 마음 뿐이었다. 내가 쓰지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몇사람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시관은 매주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미리 연락하면 평일에도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032)772-1218 /김주희기자 (블로그)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