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한국땅 다시 밟아보고 싶어요. 기회를 준 제2의 고향이니까요.”
 임금을 떼였다거나 혹은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다닐 것 같은 국내 체류 중인 중국 동포들. 사회가 항상 어두운 면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는 자진출국자 두 사람을 만났다.
 지난 26일 중국 랴오닝성 잉코우(營口)로 향하는 배 안에서 선물꾸러미를 하나 가득 안은 황령실(50·여), 김병옥(57)씨.
 잉코우가 고향인 이들은 지난 2000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다.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 주방에서 요리까지 했습니다. 두 아들 대학등록금을 대고 돈도 조금 벌었어요.”
 요리에는 원래 소질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일하면서 복 요리나 해물요리가 이제는 자신감 있다는 황씨.
 “주방에서 제가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먹는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는데, 제 손맛을 그리워할 손님들도 있었으면 해요.”
 또래들과 식당에서 일하다보니 중국동포라는 이질감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는 그는 중국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힘든 것의 전부였다고 전했다.
 그야말로 공사판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는 김씨는 처음엔 낯선 용어들로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공구 이름도 제대로 몰라 때론 싫은 소리도 듣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한해 한해 착실하게 벌다보니 중국의 빚도 다 갚고 작지만 20평 넘는 집도 하나 마련해 떠납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몸이라도 건강해야 다시 한번 찾아올 텐데요.”
 웃는 얼굴로 귀향길에 오른 그는 한국에서 맺은 좋은 인연들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아들 딸이 그립기는 김씨 역시 마찬가지. “한국에 있는 동안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만나본 적 없는 며느리를 처음으로 상봉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요. 며느리를 위해 예쁜 옷을 한 벌 샀는데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렇던 소주 맛을 이제야 제대로 느꼈건만 떠나기 전날 한국친구들과 끌어안으며 울었던 기억이 새삼 안타깝단다.
 “열심히 일하고 아끼며 생활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한국이지요. 이렇다 저렇다 말들 많지만 한국 트로트 가요 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황씨와 김씨가 전한 마지막 한마디다. /이은경기자(블로그)bul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