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생활일정표라는 자료가 있다. 옛날 서울을 출발해서 전국 8도의 각지까지 이르던 소요 날짜를 제시한다. 여기에 의하면 김포 통진까지는 하룻길이며 강화까지는 하루반의 일정이 걸린 것으로 되어있다. 그때도 지금의 국도 48번 도로와 비슷하게 갔었을듯 하다. 그러나 강화는 가까우면서도 섬이라서 배가 아니고는 건널 수 없는 길-그래서 곧잘 정쟁에 휘말린 왕족이나 선비들의 귀양살이 길이기도 했다.

 폭군 광해는 동복의 형인 임해군에게 이 길을 걷게했고 배다른 아우 영창도 이리로 내쳤다가 살해했다. 결국 자신도 아들과 함께 이 길을 걷는 운명이 되었다. 이때의 폐세자가 읊은 시 한수가 전해진다.

 『엎치락 뒤치락 세상사 파란같으니/시름근심 부질없어 마음은 되려 한가/돌이키니 스물여섯해 꿈이로구나/고이고이 흰구름 사이로 돌아갈꺼나』

 그러나 훗날 역시 귀양왔던 은언군의 후손 『강화 도령』은 이길로 해서 상경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오늘날 강화행의 48번 국도는 크고 작은 차량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4차선의 대로이다. 마음만 먹으면 두시간도 안걸려 강화에 닿을 수 있다. 예전에 갑제환 똑딱선에 실려서나 갈 수 있었던 인천에서의 뱃길도 지금은 자동차길이 열려 305번 지방도라는 이름으로 하룻길이 아니라 한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물결 거칠던 나루터에도 거대한 대교가 가로 걸쳐진지 오래되었다. 그리로 해서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요즘같은 봄철이고 보면 특히 봄나들이가 한창이다.

 강화 봄마중은 굳이 이름난 명소가 아니어도 좋다. 외진 해변이나 호젓한 외딴길도 좋다. 따지고 보면 강화 전체가 관광지인데다 명승이요 웬만하면 구석구석 도로 모두가 포장되어 편안하다.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봄내음을 호흡하며 한점 밴댕이회도 맛볼 수 있다. 길목마다 귀로의 커피숍에서는 한모금 구수한 찻물을 음미하고 장마당의 순무 따위 강화 산물도 눈요기이다.

 아직 꽃은 이르지만 지금 강도의 봄은 무르익고 있다. 마침 강화행 객선 『섬돌모루』가 오늘부터 취항하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