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들의 90% 이상은 바로 웨이하이가 속해 있는 산동성 출신들이다.
 지난 98년 웨이하이로 거꾸로 이주해 간 화교 곡덕부(44)씨는 한국출신의 유일한 치과의사다.
 대구에서 태어나 14년 동안 치과의사로 활동해온 곡씨는 의사들끼리의 치열한 경쟁과 빡빡한 일상의 한국을 벗어나고자 이곳을 찾았다.
 “화교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이나 다름없죠. 친구들도 모두 대구에 있지만 부모님의 고향을 가고 싶다는 생각과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싶어 중국을 찾아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요즘들어 40∼60대 등 한국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 많이 몰려 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곡씨는 자신이 화교지만 중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라 처음에는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선택이었음을 느낀다고 전한다.
 한국에서는 비싼 스포츠로 여겨졌던 골프를 쉽게 즐길 수 있고 경쟁이 아닌 친목다지기를 위한 술자리, 한국에선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산책의 여유까지 생겼다는 것.
 현재 웨이하이에 정착해 있는 화교 200여명들은 대부분 의류와 음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무엇이든 참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화교들의 특징 때문에 웨이하이에는 화교 유인정책까지 있지요. 화교들의 경우 그래도 관련부서가 따로 있어 쉽게 이주할 수 있습니다”
 동대문, 남대문에서 넥타이와 재고옷을 보따리에 싸들고 뱃길을 따라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화교들이 하나둘씩 건너와 이제는 화교타운 이라는 대형건물까지 들어설 정도가 됐다.
 돈은 벌었을지 몰라도 웨이하이에서도 화교들의 말못할 사연들도 있다고.
 “유독 한국 화교들은 중국에서도 한국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화교로 중국에서는 한국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하지요.” <이은경기자> bulgo@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