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도 물 만났다
스포츠도 물 만났다
  • 승인 200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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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스포츠 교류 10년
 동서 냉전시대가 절정에 이르던 지난 70·80년대 TV로 중계된 중국과 한국 대표선수의 경기는 종목을 초월해 안방극장 최고의 ‘빅이벤트’였다.
 인구 10억이 넘는 대국과 20분의 1도 안되는 4천만이 맞붙는 경기라는 관전 포인트가 크게 작용, 당시 ‘만리장성을 넘어 세계로’란 스포츠계 슬로건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세계 최강인 탁구와 농구, 배구에서는 적어도 그랬다.
 이에는 한국전쟁에서 맺어진 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로 이데올로기적 주적개념이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88년 각종 세계대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온 중구 여자탁구 대표선수 출신의 자오즈민과 한국 남자탁구 대표선수 출신의 안재형의 결혼 발표는 양국 체제상 일종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난 1986년과 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에 잇달아 사상 최대의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한·중 양국은 스포츠분야에 있어 일본과 함께 ‘동방 3국’간 동반자적 교류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그후 10년이 지난 98년. 한국 스포츠 스타들이 중국에 속속 진출하면서 중국 전역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의 주역으로 등장, 중국 스포츠의 대중화를 주도하고 있다.
 ‘추미(蹴迷)’라 불리는 열광적인 축구팬 2억명을 보유하고 있는 축구와 아시안게임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 최근 대중화된 골프에서 유독 활발한 교류가 펼쳐지고 있다.
 이중 한·중 축구교류의 선봉장은 단연 중국 프로축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중국FA컵 우승 신화를 일궈낸 칭다오(靑島) 피지우팀의 이장수 감독이다.
 98년 첸웨이 환다오를 맡아 중국에 진출한 이후 리그 최하위 팀인 충칭(重慶) 리판팀을 맡아 중국FA컵 우승팀으로 만들어 ‘중국축구의 별’로 불리고 있는 이 감독은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2억명이 넘는 추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감독 이전에도 최은택 감독이 지린성 옌볜팀을, 김정남 감독이 산동팀을, 박종환 감독이 우한팀을 맡아 키웠다. 이후에는 차범근 감독이 99년 선전 핑안팀을 맡아 한국축구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태권도에서는 지난 9월 독일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 국제대회에서 중국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할 만큼 한국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톈진방송국의 리가선(李家森)주임기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위에류 류 선수를 키워낸 사람이 바로 한국 사범”이라며 “톈진에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체육관이 20여곳에 이를 만큼 대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는 강한 매너와 규율로 중국 청소년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준다는데 매료돼 현재 중국 내에 태권도장 100여곳이 성업 중”이라며 “천진시도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를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산동성 웨이하이(威海)시와 칭다우(靑島)시, 옌타이(煙台)시를 중심으로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골프장 조성붐도 한국과 무관치 않다.
 웨이하이시로 18만평의 부지를 임대받아 처음으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산보공원복리 유한공사 박종철(68)사장은 “한국에서 가까운 칭다우와 웨이하이, 옌타이를 중심으로 현재 5∼6곳의 골프장이 성업중”이라며 “이들은 90년대 후반부터 주로 홍콩·대만자본을 유치, 조성됐으나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데다 골프장 사용료가 저렴해 한국관광객이 대부분이 전체 고객의 90%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한·중간 스포츠 교류는 최근 비인기 종목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89년부터 94년까지 한국여자하키대표팀 코치를 맡아 90년 베이징과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이끌어낸 김창백 감독이 2000년에 중국으로 진출, 현재 중국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중국대표팀에게 우승을 안겨줘 중국 스포츠계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밖에 동방여자농구팀의 김윤 감독도 특유의 훈련방식으로 중국 스포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 프로야구 리그에 강종필 전 계명대 코치와 이승훈 전 청주기공 코치가 올 시즌부터 베이징 타이거스에서 각각 타격코치와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한류열풍을 탄 한·중 스포츠 교류는 92년 수교 이후 엘리트 스포츠 못지않게 민간 및 지자체 차원에서 더 활발하다. 중국과의 교류 물꼬가 트이면서 국내 지자체들이 앞다퉈 체육교류를 들고 정기대회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축구’다.
 지난해 한·일 월드컵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축구’는 이장수 감독이 기여한 공로가 크겠지만 지자체 및 기업차원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톈진(天津)시가 매년 돌아가며 공무원간 축구교류전를 갖고 있고 웨이하이(威海)시도 자매결연 도시인 전남 여수시와 축구를 비롯한 민간차원의 체육행사를 갖고 있다. 기업차원의 교류는 주로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중국 톈진(天津)시의 현대전자 유한공사는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톈진시 처음으로 조성, 운영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직원 체육행사를 개최하는 등 현지인과 체육을 통한 일체감 조성에 나서고 있다.
 또 웨이하이시 교민들로 구성된 ‘무궁화 축구단’역시 웨이하이시 현지의 각 기업 및 관공서 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전을 가지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칭다오에서 만난 한 교민은 “한·중간 스포츠 교류도 좋지만 이장수같은 명장이 왜 한국에 머물지 않고 중국에서 활동해야 하는지 잘 새겨볼 일”이라고 충고했다. 한·중 스포츠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스포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성기자>jspark@incheontimes.com
 
 
 #‘충칭의 별에서 중국의 별로’ 이장수 감독 인터뷰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축구에 관중이 모여야 합니다. 한국프로축구가 중국 프로축구와 달리, 리그 종반으로 갈수록 관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리그결과를 다 알기 때문 아닙니까.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은 빨리 고쳐야지요.”
 지난 98년 중국으로 진출한 이후 첸웨이 환다오를 거쳐 충칭(重慶) 리판팀, 칭다오(靑島) 피지우팀을 잇따라 맡아 외국인 감독으로는 전무후무한 중국FA컵 두 차례 우승을 일궈낸 이장수(47) 감독은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프로축구 운영에서 찾았다.
 ― 중국에 진출한 이후 언어장벽 등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축구선수는 축구로 말한다. 초기에 언어장벽이 있었으나 중국어 회화책으로 독학, 이젠 웬만한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
 ― 선수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나.
 ▲프로선수는 프로다워야 한다. 특히 훈련 중에는 위 아래 없이 모두 참여시킨다. 중국선수들은 정신적으로 한국선수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사회주의의 평등주의로 인한 일종의 문화적 차이다. 때문에 경기중이나 훈련 중 특정 선수에 의존하고 치중하는 경향을 지양하고 있다.
 ― 중국으로 진출한 이후 맡았던 팀의 성적은 어땠나.
 ▲98년 충칭 리판팀을 중국 축구협회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지난해 칭다오팀도 축구협회대회에서 우승했다. 칭다오팀은 현재 중국 1부리그인 갑A팀 15개 구단중 7위를 달리고 있다.
 ― 한·중 스포츠 교류에 기여한 바가 큰데.
 ▲중국내 15개 프로축구팀 중 외국인 감독이 10명이 있다. 그러나 축구열기가 대단해 1년을 못 넘기고 도중하차하는 감독들이 대부분이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다.
 충칭 리판팀이 중국FA컵에서 우승한 이후 한국사람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에 대한 위상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한국축구 발전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중국에는 현재 1부리그라 할 수 있는 갑A팀 15개 구단과 2부리그인 갑B팀 12개 구단,그리고 3부리그인 을팀이 있다. 따라서 중국 프로축구는 리그전이 종반으로 갈수록 어느 팀이 우승하느냐보다는 어느 팀이 하위리그로 떨어지느냐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때문에 관중이 리그 종반까지 경기장을 찾는다. 한국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훌륭한 경기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2부리그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 한국에는 언제쯤 돌아올 생각인가.
 ▲매년 1년만 더 있자는 것이 늦어지고 있다. 여건이 형성되면 한국에 돌아가 프로팀을 맡을 생각이다. 그러나 서두를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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