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국 중국의 자존심& 한류열풍 (下)
 90년대 후반부터 중국대륙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열풍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문화적 대사건’이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한 90년대 이전부터 민간 위주로 중국시장을 겨냥했던 일본이나 프랑스, 미국 등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반면 한국은 불과 5년도 안돼 거대한 중국대륙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5천년이 넘는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맺어온 한·중 양국의 역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막혀 ‘가깝지만 먼 나라’로 등져온 것을 보면 더 그렇다.
 외교단절로 인한 양국의 심리적 간극은 92년 수교로 좁혀지기 시작했고 이중 일등공신은 단연 ‘한류 열풍’이다.
 
 #대륙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열풍.
 
 한국의 드라마가 중국 전역에 방영되면서 ‘별은 내 가슴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 출연했던 안재욱과 차인표를 한류 스타로 만들어 놨고 98년 댄스그룹 ‘NRG’는 홍콩과 일본 스타들을 제치고 중국 내 톱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현재에도 가수 안재욱과 베이비복스, 강타, 이정현, 코요태 등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이같은 한류열풍은 90년대 초 ‘북풍(北風)’으로 큰 인기를 끈 장호철 등 한국계 대만가수들의 대륙진출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한류열풍은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오랫동안 고전과 경극, 기예 공연 등 전통문화가 지배해온 중국 대중문화계를 주도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중국 젊은층의 의상과 헤어 스타일, 액세서리, 음식에서 서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중국 톈진(天津)시의 외곽 남개구(南開區)의 안산서도(鞍山西道).
 이 거리는 톈진대학과 남개대학, 톈진사범대학, 톈진중의대학 등 톈진의 대부분의 대학이 밀집해 있어 우리의 동숭동 대학로와 같이 톈진시내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유학생들이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이곳도 어느새 베이징(北京)의 왕징신청(望京新城) 못지않은 한국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단연 거리도 한국풍 일색이다.
 ‘한국생활용품점’, ‘커피숍’이란 한글 간판이 즐비한 사이로 한 미용실에서 틀어놓은 가수 이수영의 ‘덩그러니’와 이기찬의 ‘자꾸만’등 한국의 최신 인기가요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흔한 일이다.
 톈진중의대학에 유학 중인 이재룡씨(34)는 “이곳에 오면 현재 한국 내 인기가요와 유행의 흐름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한국문화 전이 속도가 빠르다”며 “한국가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느리고 완만한 중국이나 대만가요와 달리, 동양적이면서도 서구화된 세련미가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천평쥔 베이징대 교수도 이곳 언론기고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대만이나 일본은 금전 문제나 단순한 스토리 전개가 대부분인데 한국은 강렬한 애정, 개인 상호간의 갈등을 내밀하게 표현해 중국 내 젊은층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역사적 감정도 있겠지만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보다 훨씬 먼저 중국에 진출했음에도 한류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이같은 한류열풍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산동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서역의 신장자치구의 우루무치까지 전 중국대륙을 대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류의 저변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같은 물음에 대해 중국인은 물론 한류스타들의 중국공연을 위해 체류하고 있는 공연기획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소적이다.
 중국사회과학원 멍판화(孟繁華)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중국, 축제인가 혼돈인가’라는 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그동안 우상으로 꼽혔던 정치지도자나 과학자, 문학예술가는 연예계 및 스포츠 스타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고 민족의 존엄성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품격 있는 문체로 표현한 문학작품은 통속소설의 위세에 밀렸다”며 한류열풍으로 인한 중국의 전통문화 상실을 경계했다.
 심지어 중국 전통문화의 퇴색을 우려하는 이들은 한류를 규제해야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물론 한류에 젖어 있는 중국의 20∼30대 젊은층의 의견일 수는 없겠지만 중국 내 한국공연 기획자들의 느끼는 체감은 위기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몇 차례 한류스타 공연을 성사시켰던 고석기(35)씨는 “분명한 것은 중국 내 한류열풍이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한류문화산업이 성장할 기반은 충분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까지 한류열풍을 등에 지고 성공한 공연기획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가요의 경우 불법복제가 심해 음반판매 수익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중국 문화의 특성과 90년대 후반 초창기 공연기획자들이 만들어낸 무분별한 공연유치의 결과”라고 말했다.
 2000년도 인기댄스그룹 ‘베이비복스’가 요란하게 베이징 공연을 홍보했다 취소된 사례와 같은 일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고씨의 말처럼 베이징이나 톈진시 시내 유명 레코드점을 가면 쉽게 한국가수들의 CD를 쉽게 접할 수 있으나 대개 우리 돈으로 2천원 안팎에서 거래 되는 불법 복제판이 대부분이다. 한국영화 DVD도 대부분 같은 경향으로 불법 복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희선에 이어 전지현 같은 새로운 스타들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아닌 중국기업의 광고모델로 각광받고 있고 지난해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SARS)가 창궐했을 당시 김치에 중국인들이 열광했던 것을 보면 여전히 중국내 한류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대해 김호연 톈진한국상회 회장은 “문화의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면서 “한·중이 5천년이 넘는 역사적 유대를 갖고 있는 만큼 한국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폭을 넓혀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중국내 한국문화 콘텐츠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주성기자>jspark@incheontimes.com
 
 # 한류공연 기획자 이재희씨
  - 한류 국가산업 측면에서 지원책 마련돼야-
 “중국 내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중국이 90년대 들어 대외 개방정책을 공표하면서 중국내부의 대체문화 부재에 따른 틈새시장 진출이란 측면이 강합니다.”
 지난 2000년도 댄스그룹 ‘베이비복스’의 베이징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3차례의 한류스타 공연을 기획했던 이재희(38)씨는 3년간 중국 현지에서 느낀 한류 열풍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한류 열풍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고 있는 대중문화산업의 세계시장 진출 신호탄이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전략 부재와 마구잡이식 공연유치가 결국 한류 열풍의 거품을 만들어 안타깝습니다.”
 13차례의 한류공연 중 몇 차례나 흥행에 성공했냐는 질문에 대해 이씨는 “모두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실패의 원인을 문화콘텐츠 수출이란 국가전략 부재와 돈벌이에 혈안이 된 공역기획사의 마케팅 부재를 들었다.
 한·중수교전부터 중국시장에 들어와 있는 일본의 경우 중국 내 문화공연시 흥행에 실패해도 공연기획자가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정부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경우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관심이 부른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한국에 비해 일본의 경우 비교적 탄탄하고 실력있는 공연기획자들이 선별돼 중국공연을 주도하다보니 중국 내에서 탄탄한 신뢰를 쌓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일례로 이씨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기획한 한 한류스타의 공연을 들었다. 당시 보름 전부터 예매를 시작, 1장에 80위안(1만2천원)하던 입장권이 팔리지 않자 공연 당일 공연장 입구에서 단돈 5위안(750원)으로 낮춰 겨우 공연을 맞췄다는 것.
 공연기획자의 마케팅 부재를 지적한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한류스타 공연시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드라마를 수입하고 한국가수를 데려와 공연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젠 중국 내 방송국이나 기업들이 앞다퉈 한류스타를 캐스팅해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추세가 늘고 있어요. 대륙문화의 자존심을 찾겠다는 새로운 문화현상이지요.”
 그가 인터뷰 내내 국가차원의 전략이 필요함을 지적한 이유다.
 “그런데도 중국에서의 한류는 중국에 진출한 각국의 문화콘텐츠 가운데 문화적 동질성이 가장 많아 경쟁력이 높습니다. 이를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정책지원이 시급합니다.”
 <박주성기자>jspark@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