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순/인천 간석초교 교사

 작년 이맘때 일이다. 6학년을 맡게 되었다. 첫날 첫 대면에 얼굴과 이름을 함께 익히기에 온갖 정성을 들여 출석을 불러나갔다. 『○○○, ○○○…』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동이 있었다. 전해에 담임하신 선생님과 상담한 결과는 장기 결석에 가출, 혼숙까지…. 초등학교 아동이 겪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그 아이의 비뚤어진 생활 뒤에는 가정 문제가 버티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뒤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나타난 ○○○. 그때부터 긴 줄다리기는 시작되었다. ○○이는 차츰 정상을 회복해 갔고 폭발적인 감정 표현의 횟수도 차츰 줄어든 어느날 점심시간이었다. ○○이가 중학교 형들한테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뛰어나가 겨우 그 선배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장기 결석에 지금도 혼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의 대화 끝에 그 선배들에게 ○○이가 학교에 남아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이 ○○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가슴을 열고 정성을 다하여 대하면 이런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슴을 적셨다. 조용하게 잘 지내던 ○○이가 12월 초에 다시 학교를 결석하기 시작했다. 가슴 조이며 수소문한지 사흘만에 교문 밖에서 발견된 ○○이!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불안한 눈초리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는 내 손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다. 세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교실에 함께 앉은 ○○이는 놀라운 얘기를 털어놓았다. 만수동 어느 여관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네 부류의 사람들이 연결고리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다.

 한명의 교사가 40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 아이를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 아이들이 학교 현장에서 많은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동조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기가 일쑤인데 이런 현상이 벌어질 때 교사로서의 한계를 통감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서 우리 교사가 그들 중 얼마만큼을 밝은 빛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일까?」하는 절망감을 느끼며 하루속히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 혼란속을 헤매는 이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손을 마주잡아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