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내일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정호(鄭澔)는 나이 80에 배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즐긴 분이다. 그는 영조때 영의정을 지내면서 90까지 살았다. 젊어 과거길에 오를때 『이름이 안좋으니 낙방하리라』는 내용의 꿈을 세번이나 꾸었으나 『급제는 학문에 달렸지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며 버티었다.

 이름이 명복이나 재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뜻이 있고 부르기 좋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행동거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흔히 이름에 의미를 두고 앞날을 기대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집안 어른이 고심하여 작명하고 존경하는 친지나 유명하다는 작명가에 의뢰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엔 동명이인이 많다. 전화번호부라도 펴놓고 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다. 97년 발행의 인천시 중구 등 6개구군의 전화부에는 여자 이름으로 많은 A씨가 296명 B씨가 254명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깨알보다 더 작은 활자로 나열된 인명을 대충 훑어 보면 거의가 같은 이름으로 겹쳐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전화번호부로는 번호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이름은 너무 단순하고 유형이 비슷하다. 이렇게 되면 작명으로 고심한다는 사정도 사실이 아닌 셈이다. 우리식 이름이 한자 일변도인데다 성씨도 김 이 박 최 정씨 등이 많고 보니 같은 이름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 조차 이름의 음절수나 쓰이는 한자수를 제한 동명이인을 더욱 부채질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의 우리말 이름이 되살아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교향악단 지휘자 모씨의 이름은 참으로 부드럽고 좋다. 이외에도 보람 하나 한샘 빛나리 등 많다. 생각해 보면 좋은 이름은 얼마든지 구상해 낼 수 있다. 에릴 프롬은 『지금처럼 비인간화로 향하는 현재의 추세라면 이름 대신 번호를 가지게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자녀의 이름을 새로 지을 때 좋은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이름이 되도록 공들여야겠다. 부천시가 아기이름 지어주기를 하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