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
 세계에서 최초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맬러리(Mallory, George Herbert Leigh 1886~1924)가 한 말이다.
 유럽의 최고봉인 엘브르즈(Elbrus)가 있어 오른 젊은이들이 있다. 인천대 산악부 홍상오(26·컴퓨터공학과), 정영민(23·경상학부), 정지연(20·경제학과)이 그들이다. 이들은 7개대륙 최고봉 등정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선배 유주면(40·쌍용자동차 해외서비스)씨를 대장으로 지난 7월30일부터 8월9일까지 엘브르즈 등정길에 나섰다.
 러시아 카바디아와 발카리아 자치공화국간의 국경에 위치한 엘브르즈는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해발 5천642m. 정상정복에 성공한 정지연씨는 ‘성취감’을 말하면서도, 내년말 예정된 남미대륙 최고봉 아콩가구와 등정 참여에는 난색을 보였다. 지난 6개월간 체력훈련 등 준비과정도 그러려니와 땀조차 나지 않았던 엘브르즈 등정 때문이다.
 이들의 등정길을 인터뷰와 정씨의 등정기를 통해 재구성해 봤다.
 #출국
 7월30일 아침.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출발이다. 지난 1998년 북미 맥킨리봉으로 시작된 산악부의 7대륙 최고봉 등정 두번째로 도전하게 된 엘브르즈.
 고등학교 시절 아빠와 함께 국내의 많은 산을 오른 적이 있지만 전문 ‘산악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해외원정 길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선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나섰다.
 지난 2월부터 6개월여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체력훈련. 왕복 3시간 거리를 마다않고 아침 8시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심폐강화훈련을 했고 주말에는 실제 등정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매고 산행을 하며 팀웍을 다졌다. 남자대원들과 체력을 맞추기 위해 방학도 친구도 없이 꼬박 6개월동안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엘브르즈에 대한 사전정보를 취합하고 타 대학 원정보고서도 탐독했다. 등정길에 먹어야할 식량과 의약품, 등정장비도 하나하나 준비했다.
 힘든 준비과정이나 훈련은 생각도 않고 막연히 참가하겠다며 가볍게 손은 든지 벌써 반 년. 처음엔 ‘고소’나 ‘크래바스’ 등 고산지대에 대한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점점 무뎌졌고 자신감도 조금씩 들었다.
 10시간의 비행끝에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다시 비행기와 차를 타고 6시간. 산골마을 켈스콜의 호텔 창문 너머로 사진으로만 접했던 하얗게 눈 덮인 엘브르즈의 두 봉우리를 보면서 감회가 새롭고 마음이 벅차 올랐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엘브르즈
 8월1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엘브르즈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3천800m 배럴 캠프(Barrel camp)에 도착했을 때, 등정을 마친 우리나라 산악회가 막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느낄 감정을 상상해 보니 부럽고 또 부럽다.
 정상정복 시간을 줄이기 위해 400m 위에 있는 디젤 캠프(Dissel camp)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했다. 갑자기 고도를 높였더니 어지럼증을 밀려왔다. 벌써부터 지친다.
 #고소적응훈련
 고소적응 훈련을 위해 2일 오전 3시 기상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칼로리가 높은 비스켓이나 초코바, 육포, 사탕 등 행동식을 준비해 4천800m 고지의 파스트초프(Pastukhov Rocks)로 향했다.
 5시간이 걸려 파스트초프에 도착했다. 맑은 날씨 속에 무난히 고소적응훈련을 마쳤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이 고소로 텐트신세를 지는 바람에 세계 각지에서 온 다른 등정팀과 만날 시간도 낼 수 없었다.
 먹고 자면서만 이틀을 보냈지만 다른 대원들을 돌보며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D-DAY
 베이스 켐프를 마련한 지 4일째 되는날 정상공격을 시작했다. 전날 체력보강을 위해 마늘 냄새를 풍기며 해 먹은 백숙 때문인지 속이 든든하다.
 4일 새벽1시 일어나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당초 계획했던 떡국이 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은 것이다.
 등정 예상시간은 15시간. 파이팅을 외치고 영민선배가 선두에 섰고 그 뒤에 주면선배 그리고 나, 마지막에는 부대장인 상오 선배 순으로 한걸음 한걸음 정상으로 향했다.
 지난 4일간 맑은 날씨를 보여고, 새벽별이 밝게 비추고 있어 등정길이 힘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4시간을 걸었을까, 고소적응 훈련때 보다 1시간을 줄여 파스트초프에 도착했다. 다른 대원들의 고소현상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았지만 직장생활에 체력훈련량이 적었던 주면 선배가 많이 지쳐 보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힘겹게 내딛는 발걸음 만큼 바로 옆에서 해가 더디 뜨며 붉은 기운만 내뿜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변덕스런 날씨는 ‘화이트 아웃’을 만들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다. 내복에 겹겹이 옷을 입었지만 추위는 살속을 파고 들었고, 땀조차 나지 않았다.
 해가 떠도 너무 추워 쉴 수 조차 없는 탓에 준비해간 행동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못했다. 게다가 고소까지 밀려들어 속이 미식거렸다. 앞서가던 주면 선배가 뒤쳐졌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크레버스’ 구간인 사들(Ssaale)로 접어 들었고 아이젠을 찬 대원들은 길을 따라 다섯 걸음에 한번 쉬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 상황이 더 나빠졌다. 안 움직이면 당장 얼어죽을 것처럼 춥고, 앞은 안보였다. 오른 쪽이 분명 절벽인데 평지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생각 없이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날씨 때문에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다른 팀도 있었지만 먼저 등정길에 성공한 러시아 침이 20분 남았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정상을 4m 남겨놓고 뻗고 싶을 정도로 내 체력을 바닥이었고 잠을 못 자 눈은 계속 잠겼다. 표식기를 찾아 헤맬 뿐 정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맑은 날씨가 찾아왔다. 조그만 돌덩이와 누군가 두고간 흔적들이 보인다. 정상이다. 9시간만에 해발 5천642m, 유럽의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된 것이다.
 심술궂은 날씨는 새로 만든 산악부 교기를 날려 버렸다. 사진기도 말을 듣지 않았다. ‘바라클라바’에 눈발이며 콧물이 얼은 채 추한 모습으로 겨우겨우 교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기쁘다는 생각보다 ‘내 할 일은 끝났다’는 안도감과 올라온 만큼 언제 무슨 힘으로 내려가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바람이 잦아 들었고 햇볕도 따뜻하게 감싸왔지만 모두 힘들고 지친 탓에 하산길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었다.
 꿈을 꾸는 듯이 힘들게 하산을 하고 베이스 켐프에 도착해 텐트에 몸을 던졌을 때가 되서야 ‘내가 드디어 했구나, 여기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60대 할아버지가 올랐던 산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이어 참 대단한 경험이고 성취였다.
 #되찾은 일상
 힘든 여정이었지만 이번 엘브르즈 등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남을 배려하는 마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원들 간에 의지할 수 있는 믿음.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와도 정신력만 갖는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펼쳐본 등정 사진 하나에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의 감정이 다 담겨 있었다. 아직도 파란 하늘이 눈발에 가려 안 보이는 그 사진을 보면 설레이고 뿌듯하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투자된 나의 에너지만큼이나 내 모습이 대견스럽다.
 <등정기 정지연, 정영민. 정리 김주희기자> juhee@incheontimes.com
 <사진 인천대 산악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