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은 우리 교육의 상처가 낱낱이 드러난 기간이었다. 거액의 촌지 문제, 현직교사와 입시학원과의 학생 사고 팔기, 학교 폭력, 피지도 못한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왕따, 체벌 교사의 경찰서 연행 등 우리교육은 철저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벌거벗은 몸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작업이 한창이다. 교육소비자들의 의견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하여 일방적인 교육으로 인해 일어났던 폐해들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는 분명 지금까지 교육의 주체에서 소외되어 왔던 학부모들을 교육에 참여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참여는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교육참여는 학교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이 참담한 모습으로 사회에 드러나기까지 학부모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이 입시비리, 학원 학생 알선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과 인격 무시가 학교 폭력에 영향을 안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선생님을 「선생」, 아무개로 부르는 학부모가 학생에게 교사를 무시하도록 암묵적인 가르침을 한 것은 아닌가? 그런 학부모의 행동들이 암묵적인 가르침으로 학교교육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을까?

 한 나라의 교육문화는 학부모와 교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것만으로 우리 교육이 바른 모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정과 학교가 한 학생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때 바른 교육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에듀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교육개혁은 학교현장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진정한 교육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염려된다.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중점 활동도 학교현장의 개혁에만 치중되어 있어 이런 걱정을 더하고 있다.

 학부모가 가정에서 학생들의 전인교육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을 복원하는 정책적인 지원이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되어 학교교육과 연계될 때 교육 개혁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교육의 소비자인 학부모를 교육개혁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학부모는 교사를 교육의 생산자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파트너십이 형성되어야 한다. 교육은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 그 두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와 교사라는 두 악기로 협연되는 연주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