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조 문신 김수항의 부인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사윗감을 고르면서 셋째 아들 김창흡에게 민유중의 자제들을 만나보라고 했다. 그러나 민씨댁을 다녀온 아들은 말하기를 그댁 자녀들이 모두 생김새나 기력이 나약하다고 했다. 부인은 그럴리가 없다고 했고 얼마후 다른 신랑감을 골라 정혼했는데 이번에도 부인이 사람을 볼줄 모른다며 한탄했다. 혼인후 참봉 벼슬을 하던 사위는 겨우 나이 서른에 요절하고 말았다.

 부인은 일찍이 비단 세필을 짰다. 그중 한필은 남편의 관복을 짓고 나머지 두필은 깊이 간직했다가 맏아들 김창집이 과거에 급제하자 곧 관복을 만들어 주고 남은 한필은 손주사위인 조문명이 급제하자 관복을 만들어 입혔다. 부인이 짠 비단으로 관복을 지어 입은 세사람이 모두 정승이 되었다.

 우리 속담에 사위는 백년손님이요 며느리는 종신식구라고 한다. 사위나 며느리나 남의 자식이되 며느리는 제집 사람이니 스스럼 없고 사위는 정이 두터우면서도 언제나 손님처럼 어려운 존재라는 뜻이다. 딸과 잘 살아주기를 원하여 사위의 비위를 맞추려는 딸둔 부모의 어려운 처지가 이만저만 아니었을 터이다. 그래서 사위가 왔다는 말만 들어도 장모는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가 맞으며 살찐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게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

 사위를 위하는 대접은 음식상만이 아니었다. 가을철 어쩌다 사위가 처가에 갔다가 추수를 거들기라도 하게 되면 남과 달리 눈에 표가 나도록 짐을 적게 지도록 했다. 그러니 이를 보는 다른 일꾼들이 『약한 사위질빵 덩쿨 질빵이라도 끊어지지 않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사위질빵이란 여름철에 흔하게 보는 덩쿨식물인데 덩쿨은 길게 뻗어도 연약함으로 생긴 말이다.

 KAL기 참사로 숨진 이성철 회장의 유산상속 항소심에서 또다시 사위가 승소했다고 한다. 이회장의 형제들과의 상속권 문제가 소송으로 번져 1심에서도 사위측이 승소한 바 있었다. 대법에의 상고가 남아 있으니 확정된 상태는 아니니 형제와 사위중 누가 먼저인지 법이 가려줄 결과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