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을 통해 칸 영화제 들여다보기 
 비단 칸 영화제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영화제의 성패는 개폐막작의 적절한 선정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개막작 선정은 특히 더 그러기 십상이다. 그간 숱한 잡음에 시달리던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 4회를 맞이하며 비교적 우호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도 실은 그와 무관하진 않다. 박광수, 여균동, 박찬욱, 임순례 등 여섯 명의 감독이 동원돼 연출한 인권을 소재로 한 여섯 편의 단편 모음인, 개막작 ‘여섯 개의 시선’에 대한 평가가 전에 없이 좋았던 것이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따라서 영화제 성격에 맞는 최적의 개막작들을 고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칸 영화제에서야! 하지만 그 권위를 의심스럽게 하는 개막작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무리 공식 경쟁 부문 작품이 아니라 비 경쟁작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가끔은 심해도 너무 심한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올해 개막적으로 간택 받은 행운의 프랑스 영화 ’팡팡 라 튤립’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김진국 기자가 간략히 소개했으니 만큼 영화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련다. 영화는 한 마디로 극히 상업적이요 대중적 오락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비범함을 찾아보기 힘든 범작. 사실 ‘상업적이요 대중적 오락물’이란 정체성이 흠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영화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관객과의 소통이란 점을 잊지 않는다면, 게다가 그간 칸이 견지해온 악명 높은 비대중성을 상기한다면 그건 오히려 작지 않은 덕목이라 할 법도 하다.
문제는 그 수준 내지 정도다. 목하 우리 영화계를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강타한 ‘살인의 추억’(감독·봉준호)이나 개인적으론 2003년 주목할 만한 문제작으로 자리매김될 ‘바람난 가족’(임상수) 등을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칸의 모든 부문에서 퇴짜 놓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개막작 선정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에 하는 말이다.
나랑 같은 숙소에 머무는 모 평론가는 영화를 가리켜 “남자 주연배우 뱅상 페레스가 성룡을 흉내내기 급급하다”라고 일갈했으며, 또 다른 평론가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도중에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를 끝까진 보긴 했지만, 나 역시 이들의 평가와 그다지 다르진 않다. 내가 영화제의 정치학에 그토록 집착하는 건 그래서다. 언제부터인가 칸 영화제를 휩싸고 있는, 다분히 팍스아메리카나를 연상시키는 극히 보수적 (혹은 민족주의적인) 프랑스의 자국중심주의 바람이 아니라면, 또 프랑스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파워맨 뤽 베송-그는 영화의 제작 뿐 아니라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다-의 입김이 아니라면, 이번 칸 개막장 선정은 한마디로 불가능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