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각 민족에게는 그들 특유의 월력이 있었다. 절후가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만큼 그 기준은 농경이었다. 원래 로마력의 일년은 현행의 3월부터 12월까지의 10개월 304일에다 달력에 속하지 않은 수십일로 되어 있었다. 그후 여기에 야누아리우스와 페브루아리우스를 보태 비로소 12개월이 되었다.

 유대인의 민력은 춘분이 연시요 첫달은 니산월이다. 이때에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이 있고 이때쯤이면 늦은 봄비가 내리며 보리를 수확하는 때이다. 인도의 벵골지방에도 그들의 고유 달력이 있었다. 그들의 연말은 태양력의 4월에 해당했다. 계절적으로 열풍과 함께 심한 모래바람이 불어닥치고 나면 단비가 내리며 이때가 한해의 끝머리였다. 벵골 출신의 타고르는 은혜로운 단비의 계절을 장중하게 읊었는데 이것이 『세모』이다.

 이에 비해 동양문화권의 우리는 음력이었다. 1895년 갑오경장때 양력을 사용한다는 발표와 함께 줄곧 사용해 한세기가 지났어도 음력의 영향은 무시 못한다. 농사나 수산업에서는 음력이 절대적이요 이중과세라며 공격을 받았을 때도 음력의 설은 건재했다. 민속의 날이니 농민의 날이니 하더니 아예 몇년전 부터는 고유의 설이 부활되었다. 금년초에는 연휴까지도 폐지 설을 단일화했다.

 앞으로 나흘후면 설이요 내일부터는 사실상의 귀성이 시작된다. 경기가 시원치 않다고 해도 귀성준비로 설레는 요즘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겨레처럼 귀소본능이 줄기찬 민족도 없다. 설이나 추석때의 귀성행렬이나 해외이민이었다가도 사후엔 모국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습성을 쉽게 못버린다. 귀성은 고향을 떠난 도시의 현대인들이 뿌리를 찾아가는 현상이다. 이를 두고 토플러는 산업혁명이 사람들을 집에서 떠나게 했고 이것이 다시 현대인의 귀소본능을 지니게 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혼잡한 귀성행렬도 줄선 떡방앗간과 제수시장도 체임일소 켐패인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하나의 민속으로 정착하겠다. 오래전 이상일 교수는 현대사회속에서도 민속적 현상은 꾸준히 생겨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