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14∼25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제56회 칸국제영화제 비공식부문 ‘회고전’에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1961)가 초청됐다.
심훈의 소설을 영화화 한 ‘상록수’는 농촌계몽운동에 땀흘리는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작품으로 신감독의 부인인 최은희와 신영균이 각각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으로 등장했고 허장강이 조연으로 나왔다.
남·북한의 정치지도자가 모두 극찬했다는 이 작품은 2년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신상옥(77), 최은희씨(73)는 지난 4월초 안양에 ‘안양신필름예술센터’(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576의2)를 개원, 현재 세계적인 영화인을 길러내는데 여념이 없다.
그 들을 만나 영화와, 영화학교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상록수는 5·16전에 찍은 것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신상옥 감독은 “영화 ‘상록수’는 정말 순수하면서도 오락성보다는 사회성에 무게를 두고 만든 작품”이라며 “진실성 있는 내용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상록수가 새마을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50mm 렌즈 하나로 촬영한 영화이지만 상록수에는 가식이 없습니다.”
신 감독은 영화기법상 ‘오버랩’ 하나 변변히 살리지 못했지만 그 것이 오히려 영화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 번이 처음은 아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은 있었어요. 오래 전에 ‘연산군’이 출품될 뻔 했는데 북에 납치된 뒤 흐지부지 됐지요. 작품으로는 이 번이 처음이예요.” 신 감독과 최은희씨는 1978년 납북, 86년까지 9년동안 북에서 생활해야 했다.
“북에서 있던 만 8년동안의 생활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상당한 마이너스 기간이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50∼60대를 영화에 전념할 수 없었으니까요.” 북한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최은희씨가 슬쩍 입을 연다. “김정일 위원장은 엄청난 영화광입니다. 아마 세계 각국의 영화 1만5천여편은 봤을 겁니다.”
그 들의 북한생활은 ‘조국은 저하늘 저멀리’ ‘김정일 왕국’ ‘내레 김정일입네다’란 제목으로 미국·한국·일본에서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 4월 안양에 ‘안양신필름예술센터’를 개원한 것은, 그런 북한에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 ‘허한’ 공간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영화인을 길러내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 부부는 믿고 있다.
“요즘 교육은 너무 이론에만 치우쳐 있어요. 이론과 실습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합니다.” ‘영화제작학부’ ‘방송제작학부’ ‘연극제작학부’ ‘연기학부’ ‘실용음악학부’ 등 최은희씨 말대로 이곳 강의일정은 실기위주로 짜여져 있다.
‘안양신필름예술센터’가 추구하는 스타는 거품만 가득한 급조된 스타가 아니다. 오랜 연습과 단련을 통해 재능, 노력, 성실성 등의 내공을 충분히 쌓은 기초가 탄탄한 ‘별다운 별’이다.
“요즘 학생들은 기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역량있는 연기자가 되는 길은 지름길이 없습니다.” 최은희씨는 후배들에게 따금한 충고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굳이 안양에 학교를 세운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안양이 1960년대 시네마 천국이었어요.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만안구 석수동 일대엔 ‘동양 최대의 촬영소’였던 안양영화촬영소’가 있었지요.”
부부에 따르면 1957년 3만평의 대지에 건립됐던 안양영화촬영소는 400·500평 규모의 스튜디오 두 곳과 풀장을 겸한 수중촬영장, 세트건조실과 현상소까지 갖춘 ‘규모있는’ 영상메카였다. 신감독은 1966년 자신의 제작사 ‘신필름’을 통해 이 곳을 인수, 80여편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현재 센터자리는 옛 안양경찰서부지다.
부부가 보는 한국영화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너무 흥행에만 치중해 주제를 놓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검열의 테두리가 없어져서인지 많이 좋아졌어요. 실력있는 젊은 감독들도 많이 나오고 있구요.” <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