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칸 영화제와 한국 영화
다음 주 수요일 14일(현지 시각)이면 제56회 칸 영화제가 화려한 막을 올린다. 소문에 의하면 올해에는 이렇다 할 스폰서가 나서지 않아, 칸을 찾는 국내 저널리스트들이 적을 거라고 한다. 속성 상 뚜렷한 명분이나 스폰서가 있어야 영화제를 참석할 수 있었다는 그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몇 해 째 연속 자국 시장 점유율 40%대를 달리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세를 고려하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위세가 거품이건 실제건….
이런 상황에서 인천일보 사상 최초로 김진국 기자가 칸을 전격 방문한다. 그것도 13일부터 25일까지 전 기간을. 그는 칸 현지에서 올 칸의 표정을 생생하게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나 또한 그와 동행한다. 난 그와 같은 숙소에 머물며 김기자의 기사 작성을 적극 도울 참이다. 서너 차례쯤은 칸 소식을 직접 전할 예정이고. 지금 쓰는 이 칼럼은 내가 띄우는 칸 1탄인 셈이다.
지난 주 모 일간지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상록수’와 ‘오아시스’의 특별 상영 외에, 올해 우리 장편 영화가 칸 진출에 완전 실패한 건 경박한 코미디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조망할 때 지당한 결과 아니냐는 것.
적잖은 영화 전문가들이 그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작품성 면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며.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실제론 아니다. 명색이 평론가라면서 내가 왜 이런 과격한 주장을 하는 지는 적어도 칸을 한번만이라도 찾은 경험이 있다면 당장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5차례 칸을 찾으며 내린 결론이지만, 단언컨대 작품성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영화제의 정치학’이란 표현으로써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오히려 작품 외적 요인들이 훨씬 더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그 좋은 예가 독일이다. 난 97년 이후 난 한번도 경쟁 부문에서 독일 영화를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독일 영화들의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 글쎄….
한국이 올 칸 진출 불발에 그친 것도 실은 그에 유리한 감독들의 신작이 나오지 않아서일 확률이 크다.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홍상수, 이창동, 허진호, 이광모, 정지우, 박진표, 송일곤 등 이미 칸에 소개된 바 있는 감독들의 신작이 선보이지 않은 것. 유독 이른바 ‘작가주의’에 집착해온 칸이 상대적으로 생짜 신예의 작품에 인색하다는 건 악명높지 않은가. 작품성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건 따라서 신예의 데뷔작이거나 진출 경험이 있는 감독들의 신작일 경우다. 우리에게 칸이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우린 좀더 영악해야 한다. 그렇다고 칸의 구미에 맞춰 영화를 만들 순 없지 않을까? 적잖은 거장들마저도 그러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전찬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