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나비’를 보고 놀라다
 
 ‘나비’(감독·김현성)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가문의 영광’의 대성공 이후 상종가를 치고 있는 김정은과, 연예인으로서 타고난 끼에도 불구하고 출연하는 영화마다 족족 실패를 거듭해온 김민종이 호흡을 맞췄다는 것 정도 외에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던 내게, 영화에 실린 일말의 시대성이 전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도 멜로드라마임을 강변하고 있고 대개의 평자들 또한 지독한 신파물이라며 영화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거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영화는 물론 지극히 통속적인 신파 멜로물인 게 사실이다. 특유의 코믹 연기를 능청스럽게 펼치는 초반부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촬영 분량 중 근 70% 가량에서 울어야 했다는 은지 역의 김정은은 말 그대로 눈물콧물 할 것 없이 다 짜내며 울어댄다. 그만큼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목숨을 담보로 한,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비련의 러브 스토리라는 작품의 컨셉을 고려하면 자연스런 선택일 터.
 문제는 영화의 의도처럼 그 눈물이 관객들에게 전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사회 당시 눈물 훔치는 소리들을 그다지 많이 들을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심지어는 하도 심각해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장면인데도 피식 웃는 이들마저도 없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코미디로 데뷔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의 연출이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의미?
 아니다. 다름 아닌 영화의 시대성 때문이다.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여질까 염려되어 멜로성을 강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확신한다. 감독의 진심은 그 시대성 속에 담겨져 있으리라고. 뭐 문제작 운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것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미덕이라고도. 영화 속 군 실력자가 ‘허’ 대령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그 시대성과 무관하다고도 보지 않고.
 퍽 사실적으로 구현, 묘사된 삼청교육대 시퀀스들을 목격하며 난 도저히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1980년대 초 그 시절, 내가 사치스럽게 대학에서 실존을, 삶을 고민할 때,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동세대의 그들을 지며보며 예의 감상적·신파적 눈물을 흘릴 순 없었다. ‘살인의 추억’을 볼 때처럼.
 ‘번지점프를 하다’, ‘품행제로’ 등과는 달리, 영화는 강변한다. 우리의 지난 1980년대는 결로 아름답지 않았다고. ‘광주 학살’로 시작해 영화 속 삼청교육대 만행 등 숱한 억압과 오욕으로 점철된 우리의 근 과거는 결코 노스탤지어로써 그리워할 달콤한 시절이 아니었다고. 다시 말하지만 뻔한 신파멜로에서 발견한 그 현실인식은 진정 뜻밖이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숱한 흠들이 즐비하지만...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