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중인 어느 학생의 대학입학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 소개한다.

 미국 뉴욕시티에 있는 명문 사립고교에 유학중인 K군은 한국에서 공부할때도 성적이 퍽 우수했고 TOFEL시험과 미국의 수능시험격인 SAT시험에서도 최상위급 성적이었던지라 부모가 원하는 명문 H대학을 지망키로 했다. 그런데 합격을 자신하고 입학원서를 쓰려니까 뜻밖에도 학교에서 다른 학교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 떨어져도 좋으니 입학원서만 내게 해달라고 간청을 해서 결국 입학원서를 낼 수 있었다. 워낙 좋은 성적이라 합격은 정말 자신만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K군보다 성적이 못한 애들은 여러명 합격했는데 K군은 불합격이었던 것이다.

 분명 대학의 실수일 것이라고 확신한 아버지가 그 대학으로 달려가 따졌더니 『정말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군요. 그러나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인물을 키우려는 우리대학의 이념과는 좀 거리가 있어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대학당국의 정중한 설명을 듣고는 그대로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상세히 보니 지각과 결석이 눈에 띄게 많았고, 봉사활동은 커녕 학교에서 권하는 학교신문 편집보조활동조차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던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살펴보고 합격시켰다가도 고교를 졸업할때까지 몇달간의 남은 학교생활이 좋지않아 입학이 불허되는 일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합격고사 대신 수능시험을 치러 대학에 입학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수능시험과 학력고사의 근본적 차이점을 모두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수능시험이란,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받을 만큼의 기본실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시험인 것이다.

 대학에서는 일정선 이상의 수능성적 학생들중 면접ㆍ논술ㆍ학교생활ㆍ교외생활등을 같이 평가해서 합격을 결정해야 한다. 수능시험성적이 마치 학력고사처럼 커트라인을 정하고 이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당초의 이 제도 도입의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출제를 주도하는 교육부나 입학을 결정하는 대학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뒤늦게나마 새정부가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지식이 많아도 그것을 옳게 쓸때만이 유용한 것이지, 잘못쓰면 인간세상을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교육이란 좋은 세상을 만들 인재의 수요를 공급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수요를 무시하고 만든 상품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부ㆍ대학ㆍ학부모ㆍ학생 모두가 새롭게 새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