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눈비탈길을, 동자승 하나가 걸어 내려간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까지 눈이 차오른다. 동자승은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본다.
 동자승의 우울한 눈빛만큼이나 무거운 표정의 하늘은 쉬지 않고 하얀 눈을 뿌려댄다. 눈은 점점 더 ‘퍽퍽’ 내리기 시작하고, 눈꽃인지 눈물인지 동자승의 볼을 타고 맑은 물기가 주르르 흐른다. ‘스님 안녕히 계십시오’
 오는 4월11일 개봉하는 영화 ‘동승’(감독·주경중)과 함세덕의 희곡 ‘동승’의 마지막 장면은 꼭 같다.
 ‘오지 않는 엄마를 몰래 기다렸습니다/ 밖으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동구 밖 단풍나무의 키가 자라는 것처럼/ 내 키도 자랐지만 오신다는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밀렵꾼과 파계한 비구니의 아들인 ‘도념’(김태진)은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도념이가 사는 절엔 매년 아들의 기일이면 찾아오는 젊은 미망인(김예령)이 있다. 도념이는 그 여인을 발치서나마 훔쳐보며 엄마에 대한 그림움을 달랜다. 미망인 역시, 도념이를 입양함으로써 아들과 남편을 먼저 보내야 했던 자신의 업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도념이의 유일한 동료인 젊은 스님 ‘정심’(김민교)은 끓어 오르는 ‘젊은 피’를 억누르고자 손가락을 기름에 절여 불을 붙여보기도 하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도념이를 홀로 남겨둔 채 먼저 산을 내려간다.
 모두가 떠난 산사에 외롭게 남겨진 도념은 눈이 ‘퍽퍽’ 내리는 어느 겨울날, 스님의 엄명을 거역하고 ‘비탈길 저 너머 먼 동리’를 향해 내려간다.
 ‘동승’은 제작에만 7년이 걸렸다. 
 영화의 압권은 한국산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주감독은 ‘도념’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산사의 붉은 노을에 녹여내고, 젊은 스님 ‘정심’(김민교)의 ‘속세지정’은 불타 오르는 산꽃에 담아낸다.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오대산 ‘월정사’와 정선의 ‘민둥산’, 태백산맥 일대 등 그는 5년여 가까이 전국 100곳의 산사를 돌아본 뒤 촬영장소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지금은 중학생인 김태진이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주감독은 “태진이가 워낙 먹성이 좋아 촬영하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고 웃음짓는다.
 이 영화는 제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킨더필름 페스트’(아동영화부문)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99분. 전체 관람가.<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