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영화에로의 초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소재 아트선재센터 내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스페인 영화 페스티발’(참고 www.cinephile.co.kr)이 한창 중이다.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스페인이 낳은 국보급 거장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를 비롯해 그야말로 주옥같은 스페인 영화의 대표작들이 대거 선보이고 있다.
 평소 그 정열과 투우의 나라 영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녀온 터여서 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주 만사를 제치고 영화제를 찾고는 난 그만 그 나라 영화들의 은밀하면서도 강렬한 매력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안달루시아의 개’를 스크린으로 만나며 맛본 감동에 대해선 자세히 피력하지 않으련다. 아무리 애쓴다 한들 상투적 감상평을 넘어설 자신이 없으니까. 부뉴엘의 뒤를 잇는 또 다른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의 대표작 ‘까마귀 키우기’(76) 등에 대해서도….
 아주 은밀히 나를 홀린 첫 번째 작품은 명성만 들어왔지 여태껏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과작의 거장, 빅토르 에리세의 장편 데뷔작 ‘벌집의 정령’(73)이다. 1940년 무렵 카스티야라는 한적한 마을을 무대로, 역사적 호러 물 ‘프랑켄슈타인’(31, 제임스 웨일)을 마을회관에서 본 어린 두 소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성장담. 그건 단적으로 비유ㆍ상징으로서 영화의 진수였다.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벌집의 정령들은 영락없이 독재자 프랑코의 현현이었다. 영화는 줄곧 니콜 키드먼 주연, 알로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그의 ‘오픈 유어 아이즈’(97)도 상영된다-의 ‘디 아더스’를 떠오르게 했다. 그만큼 영화를 관류하는 아우라가 인상적인 것.
 ‘이마놀 우리베’의 남아 있는 날들‘(94)은 퍽 오랜 동안 가슴 속에 자리할 걸작이었다. 여로 모로 ’크라잉 게임‘(92)의 스페인 버전이라 할 법한 영화는 현실 정치와 개인의 삶을 교직시키는 솜씨에서 “90년대 스페인 최고의 사회 영화“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통속적 플롯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감상성을 배재하는, 그러면서도 말로 형용키 힘든 짙은 감동을 자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단연 대가의 그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모두는 내일부터 영화제가 열리는 광주를 찾지 않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토요일부터 남아 있는 작품들로도 위안을 받기에 충분하다면 어떨까. 부뉴엘의 ‘비리디아나’를 위시해, 에리세의 두 번째 작품 ‘남쪽’(82), 그리고 ‘내 어머니의 모든 것’(99) ‘그녀에게’(2002) 등을 통해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초중기작 등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진짜 멋진 영화들이. 어떤가? 여러분들도 작지만 알찬 이번 영화 축제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입장료가 편당 2천원밖에 하지 않는다면….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