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7일(목) 정오 무렵, 이제 몇 시간 후면 노무현 정권의 새 내각 명단이 최종 발표될 예정이다. 그 명단 안에는 이미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이름도 들어 있을 걸로 보인다. 언론 매체 등에서는 그 인선을 들어 ‘파격적’이라고들 하지만 난 그 표현에 동의하진 않는다. 파격적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편견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이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장관으로서 이창동의 자격이 의심스럽다거나 따위의, 별 설득력 없는 편견이.
 미국의 40·41대 대통령(1981-88)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과거에 영화배우였다거나, 89년 ‘벨벳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뒤 첫 4년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으로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양분된 93년 이후 9년 여 간은 체코의 1·2대 대통령으로서 복무하다 이번 달 초 보통사람으로 복귀한 바츨라프 하벨이 세계적 명성의 극작가·수필가라거나, 또 드골 정권 하에서 문화장관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앙드레 말로가 저명 소설가였다거나 등의 사실을 굳이 강조하지 않으련다. 고도의 행정력이 요구되는 건 자명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인이, 나아가 문화예술인이 주무장관이 되는 건 어딘지 문제가 있다는 고정관념은 이 기회에 아예 사라져야 한다. 이창동 감독의 자질을 시비 거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이번 인선을 지켜보며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가 행정 경험이 전 무해서가 아니다. 규모 등에서 비교할 순 없겠지만 감독으로서의 통솔력이나 교사 및 교수로서의 경험 등이 장관 직 수행에 적잖이 일조하리라 짐작해본다. 문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시선들, 그의 문화적 전문성에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을 숱한 지지자들의 열띤 성원도 그렇거니와, 특히 그의 장관 내정을 못마땅해 했을 이들의 비판적 눈길이 여간 따갑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 또한 적잖은 부담을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난 크게 염려하진 않는다. 난 그가 하벨처럼 떠날 때를 아는 슬기로운 사람이리라 믿으련다. 진짜 염려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 가뜩이나 여타 문화ㆍ연예 분야에 비해 영화가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마당에, 장관 자리마저 하필 영화계 인사가 차지하느냐, 그건 결국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 아니냐 등, ‘인사이더들’의 질시 어린 불평이랄까. 따라서 그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인 기득권 논리이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기에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살림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는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덜 먹게 될 테고. 또 다른 ‘오아시스’들을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 거란 사실도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건 그저 사소한 투정이려니 치부하련다.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