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8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대명포구.
 ‘물 때’를 기다리는 ‘서내기’(작은 배) ‘해선망’(멍텅구리 배) 등 예닐곱척의 배를 앞에 하고 포구에 서자, 겨울바람이 얼굴을 베고 지나간다. 바람은 바닷물에 젖어 있다.
 한무리의 갈매기들이 출렁이는 바다 위를 유유히 맴돌며 움직이는 수를 놓는다. 어떤 놈은 쏜살같이 내리꽂혀, 바다표면에 머리를 쳐박았다 다시 바닷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가 하면, 다른 놈은 머리의 물을 털어내며 무자맥질을 한다. 
 멀리 시선을 던지니 ‘초지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갯벌에 박혀 포구에 정박한 배들의 깃발 사이로 초지대교 중간중간이 끊어져 보인다.
 날씨는 영하 7도였지만 물기가 뭍어있는 듯한 칼바람 때문인지, 체감온도는 족히 15도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쿵쿵 챙챙챙챙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자 컹 컹 컹 컹,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이어진다.
 풍어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21회 대동풍어제’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80년간 이어져온 대명풍어제는 처음, 한 보살이 바위 틈에 촛불과 정한수를 놓고 기도하는 형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배가 늘고 횟집 등 영업집이 들어서면서 점점 규모를 키워왔다.
 김포어촌계(계장·강명희·51)는 4년전부터 ‘대명풍어제’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인 김금화 만신을 초청해 마을의 안전고사를 기원하고 있다.
 대명포구엔 유자망, 난장망, 안강망 등 김포어촌계 소속 68척의 배가 드나든다. 배들은 덕적 앞바다까지 나가며 연초엔 쭈꾸미 벤댕이, 5월엔 오젓(새우젓), 6월엔 꽃게, 10월엔 추젓(새우젓), 12월엔 숭어 동어를 잡아 들인다.
 오전9시. 김금화 만신을 비롯한 서해안풍어제 ‘굿패’들이 대명포구를 출발, 마을 뒷산으로 향한다. ‘당나무’가 있는 당산으로 가 ‘당산맞이’를 하려는 것이다. ‘당산맞이’는 당산을 맞이하는 굿으로 당에는 ‘당신’ ‘상산부군’ 또는 ‘서낭님’ ‘장군님’ 등이 모셔져 있다.
 쾅 쾅 쾅콰광… 굿패들은 태평소, 북, 징, 꽹과리를 흥겹게 연주하며 당산으로 오른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굿패’에 눈길을 던진다.
 손을 흔드는 사람,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 화답은 갖가지이지만 웃음짓는 얼굴엔 희망이 뭍어있다. ‘부디 고기 많이 잡게 해주시고, 마을사람들 건강하게 하시고 복된 경사만 가득하게 하소서….’
 10여분쯤 올라가자 두뿌리로 뻗은 아름드리 나무가 ‘굿패’를 맞는다.
 “어허이∼ 고기 많이 잡히고 부자되고 건강하고….”
 김금화 만신이 당나무에 술을 올린 뒤 강명희 어촌계장에 방울소리를 뿌린다. 만신은 복을 기원하는 것이지만 어촌계장은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다. 굿소리를 들은 개들이 우 우 우 우 하고 겁먹은 소리로 짖어댄다.
 “어이 절햐…, 아 장화 모자 벗고 해야지 이사람아”
 “마음은 경건하게 했어요.”
 장화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절을 올리는 젊은이에게 마을 어른이 면박을 주자 그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변명을 한다.
 오전 9시55분. 다시 포구로 돌아온 김금화씨가 ‘상산맞이’ 굿을 시작한다. “모십니다 모십니다 고향산천에 모십니다.” 당산의 주신인 임경업 장군님과 산신님, 서낭님을 맞이하는 굿이다. 이어 부정을 씻고 굿당을 정화한 뒤 제신들은 청배해 즐겁게 놀려주고 제단에 좌정시키는 ‘초부정’ ‘초감흥굿’을 펼치며 굿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후두두둑, 마당에 피워놓은 불통에서 마른 통나무에 붙은 불길이 바람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아 오른다. 열기는 검은 그림자로 이글거린다.
 갖가지 영정을 모두 불러 먹이고 우환, 질병, 걱정거리 등 모든 액운을 멀리 보내는 ‘영정물림 복잔내림’ 굿과 명과 복, 재수를 기원하는 ‘제석굿’까지 끝나자 낮 12시가 다 됐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했겠다? 굿구경을 하던 주민들이 드럼통을 쪼개 불탄을 넣고 망사로 된 철판을 얹은 바베큐 조리기구에 모여든다. 그 위에 올려지는 돼지고기는 살과 비계가 적당히 섞여 두툼하게 썬 것이다. 껍질엔 아직도 다 뽑히지 않은 검은 털이 박혀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돼지내장으로 끓인 된장국과 떡, 과일을 내오는 사람들도 있다. 오랜만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해후의 기쁨을 나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자제분 출가할 때 꼭 연락주세요.”
 어시장안에 마련된 잔칫상에는 마을 사람들만 먹을 복이 터진 것은 아니다.
 “이것 좀 드시고 가세요.”
 회를 사러 온 외지사람들은 자신 앞에 푸짐한 잔칫상이 차려지자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진다.
 김금화 만신은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개개인의 복을 빌어준다.
 오후1시. ‘배연신굿’(선왕영산대감굿)을 위해 ‘굿패’가 ‘해영호’에 오른다. 김금화 만신을 비롯한 ‘굿패’는 ‘만성호’ 등 바다로 나간 7척의 배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일일히 제를 올린다.
 형형색색의 깃발을 꽂은 배들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질주한다. 삐이이∼ 배에서 흘러나오는 태평소의 연주가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살이를 달관한 중년여인의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오후 3시7분. 다시 뭍을 밟은 만신들은 통돼지를 잡아 창사슬에 꿰어 끼우고 생타살 군웅을 풀어내는 ‘군웅굿’을 벌인다. 이어 ‘대감놀이’ ‘성수거리’ ‘타살굿’ ‘조상굿’ ‘마당거리’(뒷풀이) ‘다릿발용신굿’까지 마치자 하늘이 컴컴해 졌다.
 ‘굿패’는 마지막으로 수숫대와 조짚으로 엮은 영산띠배를 만들어 띠배에 제물과 별상을 바다로 띄워 보내는 것을 끝으로 굿판을 접는다. ‘강변굿’은 액을 모두 실어 보내고 바다에서 죽은 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보내는 굿이다.
 이날 ‘대동풍어제’는 단순히 풍어와 마을의 복을 비는 기원제가 아니었다. 마을사람 모두가 한데 모여 허리띠 풀러놓고 온종일 먹고 마시며 질펀하게 노는 마을축제였다.<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