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도시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인천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나요?”
 몇년 뒤 쯤 어느날 인천시 중구 해안동을 찾은 어느 외국인은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줄이 달린 오래된 고급시계처럼 고풍스런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빵모자’를 쓴 화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왼팔을 접어 팔래트를 든 화가들은 오른손 손가락으로 감아쥔 붓으로 이젤을 터치하고 있다. 그들의 눈은 반쯤 감겨져 섬세하게 빛나다가도, 일순간 강렬히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나와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가자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빨간 벽돌로 된 벽에 붙어 손님에게 인사한다. 그림들은 마치 아침놀을 머금은 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이 부서진 것처럼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거리 한가운데에선 ‘행위예술’이 펼쳐지고 있다. 머리에 감투를 쓰고 보디페인팅을 한 거리의 예술가는 예술을 향한 열정을 몸으로 발산한다.
 이 공연을 거리에 서서 보기 싫다면 은은한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로 들어가도 좋다. 카페에선 그림과 책도 판매하므로 원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이를 구입할 수 있다.
 미술인들의, 또 예술인들의 거리 ‘예촌’의 조성이 한발짝 더 다가왔다.
 인천시의회는 지난 24일 인천시 중구 해안동 일대의 미술문화공간 ‘예촌’ 토지매입건을 조건부로 승인, 예촌건립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
 총 예산 90억4천2백만원, 부지 14만2천6백21평, 건축규모 약 1천4백평에 이르는 예촌 건립은 오래전부터 지역 예술인들의 숙원이었다.
 ‘예촌’이 조성되면 인천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의 거리가 탄생한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이 지역은 특히 월미도와 인천항만, 차이나타운을 곁에 두고 있어서 제대로 만들 경우 인천시 경제를 기름지게 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이 지역이 ‘미술의 거리’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지금처럼 사업장으로 쓰기엔 너무 낡았지만 문화적 유산가치를 지닌 일제시대 건물이 많기 때문.
 미술인들은 이때문에 “근대 건축유산을 리모델링해 예술공간으로 바꾸자 ”는 안목 높은 제안을 해오고 있다.
 운치가 넘치는 건물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접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일인가.
 외국의 경우 근대 건축물을 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쓰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설득력은 산에서 굴러내리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 등 명소가 많다. 그렇지만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센터 등 미술관이 파리문화관광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가운데 오르쎄 미술관이 바로 과거 오를레앙행 기차역과 호텔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미술공간이다. 오르쎄 미술관에선 19세기 인상파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파리시는 근교의 병기창을 고쳐 화가들의 작업장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 런던에서는 화력발전소를 개수해 ‘테이트 모던 현대 미술관’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최근 들어선 특히, 세계적인 항구 도시들이 ‘수변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영국 ‘멘체스터 로리센터’의 예를 들어보자.
 산업혁명 발원지인 멘테스터와 운하로 연결된 샐퍼드 부두지역은 70년대부터 화물의 컨테이너화 등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도크가 폐쇄됐다. 이 지역 시의회 의원들은 이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80년대 말 마침내 이곳에 아트센터 건립계획을 세웠다.
 이곳은 결국 오페라 극장, 현대미술관, 쇼핑센터, 예술교육센터, 멀티플렉스 상영관, 수영장 등 거대한 문화레저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토 미라이 21’, 캐나다의 토론토 ‘하버프런트 센터’ 등 전망대와 레스토랑 등이 결합한 문화·레저타운은 전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우중충하고 공업단지를 문화산업단지로 개조한 것이다.
 최정숙 해반갤러리 관장은 “인천은 월미도와 도크시설 개방, 차이나타운, 해안동 일대 창고 미술관 및 스튜디오 등의 아트타운 연계를 통해 매력 만점의 문화관광메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촌’조성 계획은 그러나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딘 상태다.
 토지매입건이 계획대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다.
 문제는 이곳을 과연 ‘어떻게 인천이란 도시 이미지에 맞게 조성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예촌엔 작가 아뜨리에, 임대스튜디오, 작업장, 소규모 갤러리에서부터 예술품 판매공간, 축제공간, 야외무대, 화방·책방·카페 등 상업시설까지 들어서는 것이 좋다는 여론이다.
 현재 지역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예촌엔 아뜨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밖의 여러 문화시설이 들어서야 하는 만큼 시민들은 물론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미술계 한 관계자는 “예촌조성은 가장 큰 인천문화현안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며 “관주도로 밀어부치기 보다는 시민 공모와 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