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1백일 앞두고 추모행사 잇따라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를 오늘의 대가람으로 가꾸고 산내암자 길상암에서 고아 300여명을 길러내다가 지난해 11월1일 세수 59세로 홀연히 열반에 든 동광당(東光堂) 명진(明振) 대화상.

 열반 당시는 조계종의 분규가 본격화될 즈음이어서 가까운 승려와 신도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비식을 치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스님의 청정한 삶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추모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명진 스님 문도회(회장ㆍ덕운ㆍ德雲)는 은사의 유업을 잇기 위해 명진 스님이 터닦기 작업을 해온 경남 합천군 가야면 매화리 해인사 아랫마을에 양로원을 짓기로 하고 300명 수용 규모로 올 가을께 건축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스님이 남긴 정재(淨財)로 장학기금을 만들어 해인사 학인 승려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한편 다비식 때 수습한 61과의 사리를 봉안할 부도도 조성하기로 했다.

 특히 열반 100일째를 맞는 다음달 8일 길상암에서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 100재(齋)를 올리고 추모객들에게 육성 염불 테이프를 나눠줄 예정이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명진 스님은 54년 계룡산 신원사로 출가한 뒤 57년부터 해인사에서 주석해왔다. 해인사 교무국장과 총무국장을 거쳐 82~84년 해인사 주지를 지내며 대규모 중창불사를 이뤄냈고 길상암과 함께 부산 사리암, 대구 청룡사, 의정부 삼은사 등을 창건하기도 했다.〈연합〉

 명진 스님의 생애가 돋보이는 것은 한평생을 철저한 무소유와 봉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옷을 맞춘 일도 없고 식당에 들른 적도 없다는 것은 승가에서 널리 알려진 일화. 직접 옷을 짓고 어디 갈 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또 80년대 초부터 평균 20여명씩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봐왔다. 이런 수행자적 자세 때문에 MBC TV 휴먼다큐멘터리 「인간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현재 길상암에는 초ㆍ중ㆍ고교생 고아 8명이 살고 있다.

 명진 스님의 맏상좌인 덕운 길상암 감원(조계종 선거관리위원장)은 『스님이 한창 나이에 열반한 것도 우리들이 여러 차례 입원할 것을 간청해도 거절했기 때문』이라면서 『종단이 세속적 이해관계로 시끄럽다보니 스님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