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교단에서 물러나 학교앞 하숙집에 노구를 의탁한 선생님이다. 늙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도록 평교사로 지낸 칩스 선생님이시다. 예쁜 아내는 첫아기를 낳다 먼저 가고 젊어 홀아비되어 교단을 지킨 것이다. 그의 하숙방에는 제자였던 젊은이들이 교대로 찾아와 차대접 시중을 든다. 그때마다 스승은 지난날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수학여행을 갔던 일, 몇차례의 전쟁에서 죽어 돌아오는 제자들, 그리고 지각을 잘하는 어린 제자에게는 『네 아버지도 지각을 잘하더니 너도 그랬었지』하며 회고한다. 어느날 그는 꿈속에서 많은 제자들의 합창을 들으며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 그리운 교가이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굿바이 미스터 칩스』의 마지막 장면이다. 50년대 영화화하여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학교가 있는 지명을 딴 『부륵힐드의 종』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어린 제자들이 『굿바이 미스터 칩스』하며 손을 흔드는 꿈속에서이다.

 이처럼 제자들의 은사에 대한 추억은 애틋하다. 때때로 아늑한 고향의 언덕처럼 살포시 떠오른다. 스승은 모두가 같은 분들인데 특히 어렸을 적의 선생님은 더욱 간절하다. 별명조차 호랑이 선생님-까닭없이 두렵던 선생님까지도 문득 생각이 떠올라 홀로 웃음짓게 한다.

 그래서 본지에 보도된 어떤 사은회의 사연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30여년전의 한 제자가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 소재를 물어물어 자비로 사은회를 마련한 것이다. 그가 수소문한 70여분이 먼거리도 마다 않고 시간을 내주셨다고 한다. 사은회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제자들이 마련하는 자리이다. 대개 졸업을 전후해서 모이는데 작은 다과회정도로 족한 것을 한때 호화판으로 변질 빈축을 사기도 했었다.

 이번 사은회의 주인공은 소방서의 구조반장-따지고 보면 유족한 처지도 아닐텐데 큰 일을 했다. 은사들도 여느 모임보다 몇배나 더 뜻깊이 여기셨을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애틋한 사이를 요즘 버릇없는 제자들은 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