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처연히 뒹구는 늦가을. ‘불륜’을 다룬 영화가 관객들을 찾아간다.  ‘밀애’. 제목에서부터 은밀하면서도 한편, 고혹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각색한 영화 ‘밀애’(감독·변영주, 제작·좋은영화)는 유부남 유부녀의 ‘해서는 안될 사랑’을 얘기한다. 그러나 어쩌면 ‘할 수도 있는···’.
 출판업에 종사하는 자상한 남편 효경(계성용)과 딸 하나를 두고 행복하게 사는 전업주부 미흔(김윤진)에게 어느날 남편 직장 후배라는 영우(김민경)가 찾아온다. 영우는 미흔이 있건 말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며 “오늘 밤 함께 있자”고 말한다. 넋이 빠진 미흔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라고 다그치며 옥신각신하다가 그녀의 머리를 내려친다.
 그때부터 6개월간 원인불명의 두통에 시달리던 미흔은 가족과 함께 요양차 남해도 나비마을로 이사한다.
 그런 미흔의 가슴에, 유혹은 욕조에 따뜻한 물이 차듯이 차오른다. 욕조의 물은 미흔의 윗집에 사는 의사 인규(이종원)이다. 인규는 자신의 병원을 찾아온 미흔에게 4개월간 사귀면서, 가끔은 섹스도 하면서, 대신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영화는 남자의 외도에 상처받고 휘청거리던 평범한 주부가 다른 유부남을 만나 새로운 사랑의 기쁨과 육체적 쾌락을 만끽한다는 줄거리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미흔의 불륜은 남편의 외도가 원인이지만 과연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다른 유부남과 자유롭게 몸을 섞는 과감한 사랑에 빠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남편이 상습적인 외도가 아닌 단 한번의 ‘사고’였다고 변명하는 터에.
 영화 ‘밀애’는 배우자의 배반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페미니즘적 요소를 강하게 내뿜고 있다. 갇혀 있고 눌려 있던 ‘여성의 자아’를 비로소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밤의 나선형 계단’ 등 전경린의 소설이 강한 페미니즘을 자주 분출하는 점으로 미뤄 설득력은 더하지 않을까.
 ‘쉬리’의 여간첩 이방희 ‘단적비연수’의 여자 궁수 등 여전사 이미지 김윤진은 이번 영화에서 여자의 본능을 가진 다소 나약한(?) 평범한 주부역할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영화는 그러나 원작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선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1·2’ ‘숨결’의 변영주 감독이 처음 만든 극영화란 점에서 주목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눈빛이 그다지 감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크랭크 인’ 때부터 김윤진과 이종원의 과감한 노출로 농도 짙은 베드신을 펼쳤다는 얘기가 화제였지만 이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속담을 확인시켜 준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8월 개봉했던 다이언 레인과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언페이스풀’의 얼개와도 일부 유사한 스토리라는 점도 입맛을 쩝쩝 다시게 만든다.
 실제 기자시사회가 있던 지난 28일 전경린 작가와 많은 기자들이 대한극장 7관을 가득 메웠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러닝타임 112분, 18세 이상. 11월8일 개봉. <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