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가 또다시 제한상영이라는 저주를 떨쳐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예상한 바 대로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김수용·이하 등급위)는 27일 15인 등급위 위원 전원이 참석해 열린 재심에서도 영화의 족쇄를 풀어주지 않은 것이다. 10대 5의 표결로. 그로써 ‘죽어도 좋아’를 둘러싼 등급 파문은 일단락되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최종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락은커녕 파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재심 결정 다음 날, 소수 의견을 냈던 5인 중 3인이 “…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며 등급위원을 사퇴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영화인 회의 등 영화 및 시민단체들 역시 공청회를 여는 등 본격적 문제 제기를 할 거라고도 한다. 결국 등급위는 내·외부적으로 공히 기구 자체의 역할과 위상 등과 연관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등급위는 주시해야 한다. 왜 이처럼 극심한 반발이 빚어지고 있는가를. 그 이유는 물론 작게는 이번 결정이 전혀 보편성과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해서이며, 크게는 등급위라는 조직 자체가 수긍할 만한 그 어떤 권위도 결여하고 있어서일 터. 따라서 향후의 논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이번 결정의 부당함을 계속 문제 삼아야 한다. 등급위가 근거로 삼는 영화법 및 내부 규정 어디에도 섹스를 수반한 성기 노출이나 오럴 섹스 등이 제한상영에 해당된다는 조항은 없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내용 및 표현기법이 18세 관람가 기준에서 벗어나 과도하게 일반 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내용일 경우” 정도의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자의적이요 몰상식한 판단인가. 어불성설 아닌가!
 사실 그들은 형평성을 빙자한, 예의 관행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 점은 이번 재심에 참여한 거의 모든 등급위원이 ‘죽어도 좋아’가 음란성을 지니지 않은 영화임을 인정했건만, 무엇보다 영화에 18세 관람가 등급을 내줄 경우 쏟아져 나올(지도 모를) 과도한 노출과 성행위가 묘사된 영화에 대한 우려 탓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고집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완전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격이 아닌가. 편의적 발상에 의한 엄연한 직무유기 아닌가.
 자연스레 등급위가 부디 권위 있는 기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준)행정기관적 체제나 인선 과정, 운용 방식으로 그게 과연 가능할까. 단언컨대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줄곧 등급위 해체 등 보다 근본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