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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영화이야기
전찬일 영화이야기
  • 승인 2002.08.16 00:00
  • 수정 2002.11.07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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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 3범의 밑바닥 인생과 중증 뇌성마비장애인 사이의 러브 스토리라? 그런 사랑이 과연 이 지상에서 가능할까.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을까. 또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상적이지는 않을까. 세상의 숱한 아웃사이더들의 사랑 이야기가 으레 그랬듯이 말이다. 당장 니컬러스 케이지·엘리자베스 슈 주연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떠올려보라.
 이 땅의 한 감독이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이창동. 신작 ‘오아시스’에서다. ‘초록 물고기’와 ‘박하사탕’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는 그간 세속적 사랑에는 전혀 무관심한 듯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실로 파격적 변신이다. 파격적 변신은 하지만 감독만 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공공의 적’에서 십수 킬로그램을 부풀려가며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형사 강철중역을 멋지게 소화했던 설경구는 이번에는 십수 킬로를 빼가며 영락없는 밑바닥 인생 홍종두 역을 완벽하게 해냈다. 예의 설경구를 발견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더 주목할 건 한공주역의 문소리다. 그간 별 비중 없는 조역이나 단역에 머물렀던 그녀는 가히 경이적이라 할 열연을 펼친다. 실제 뇌성마비 장애인 아닐까, 착각이 일 정도의 실감연기를 선사하는 것. 사실 두 사람의 연기만으로도 영화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오아시스’는 그러나 튀는 소재나 연기쯤으로 승부 거는 평범한 걸작은 아니다. 영화의 진짜 비범함은 그 배후에 깃들어 있다. 한 가지만 들어보자. 종두의 캐릭터. 그는 영화 속에서 종두의 친형도 주장하듯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마땅한 사회부적응자, 아니 인간쓰레기다. 가족마저 불편해하고 기피하는 건 따라서 당연하다. 종두의 형수 말마따나 그가 없을 때가 오히려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형수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종두는 영화 내내 가족을 비롯한 이 사회를 탓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여느 아웃사이더들과는 달리, 한순간도 저주를 퍼붓지 않는다. 그저 모든 걸 참아내며 속으로 삭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정당함을 강변하지도 않는다. 한공주와 나눈 눈물의 사랑이 강간으로 몰려 또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얘기가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걸. 그만큼 세상의 편견이 두텁다는 걸….
 그 태도는 일견 자포자기요 체념으로 비치지만, 정확히는 포용이라 해야 옳다. 바다가 온갖 더러운 물을 다 품고 살듯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포용. 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요 역설인가!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있는가? 난 없다. 내가 영화에 열광하는 주된 한가지 이유다. 사실 난 그 이유만으로도 ‘오아시스’가 그동안 한국 (멜로) 영화가 가지 못한 길을 걸었다고 단언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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