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때 문신 조영복(趙榮福, 1672∼1728)이 사신으로 청나라 연경(燕京)을 다녀오면서 남긴 일기인 「연행일록」(燕行日錄)이 학계에 처음 소개됐다.

 경기도박물관은 이 박물관 소장 순한문 「연행일록」과 사신으로 떠나는 조영복에게 당시 조선의 조정 관리들이 써 준 시(詩)를 모은 「연행별장」(燕行別章)을 최근 문헌해제와 한글번역을 붙여 영인본으로 엮어 출간했다.

 문헌해제와 번역은 동국대 임기중(林基中) 교수(국문학)가 맡았다.

 연행일록은 조영복이 37세때인 숙종 45년(1719년) 겨울 청나라 사신단의 일원인부사(副使)로서 한성(漢城, 서울)을 떠나 연경을 다녀오기까지 약 5개월에 달하는 142일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날짜별로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이 일기는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체의 순한문 초고본(草稿本)으로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고 조선ㆍ청 두나라 교류사와 풍속사, 당시 조선 집권층의 대청(對淸)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데서 문학적,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연행일록에 따르면 조영복 일행은 숙종 45년 11월4일 한성을 떠나 11월16일 압록강을 건넜으며 하루 평균 60∼1백리씩 걸어 12월27일 북경에 도착한 뒤 당시 청황제인 강희제(康熙帝)를 배알했으며 45일 동안 연경에 머물다가 이듬해 2월14일 귀국길에 올라 3월26일 서울로 돌아왔다.

 여행 도중 자신이 지은 시 42편이 별도로 붙어있는 연행일록은 연경에 체류하던 한달여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틈틈이 보고 느낀 감회를 기록하고 있는데 비슷한 성격의 다른 기록과는 달리 새로운 것에 대한 문화충격 소감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조영복은 난생 처음 코끼리를 구경한 경험이나 머리 푼 예수의 그림, 혼천의 등에 대해서는 신기하고 새로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행일록에서 특이한 것은 작자인 조영복이 다른 조선 사신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명나라를 높이고 청나라를 깔보는 사상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명의 멸망을 당연하다고 비판하면서 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행일록과 함께 청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조영복에게 조정 대신들이 써서 준 시 57편과 글 1편을 엮은 「연행별장」은 당시 집권세력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명이나 청을 다녀온 조선 사신들은 주로 일기 형태의 많은 견문기를 남기고 있는데 이런 기록들을 국문학계에서는 「연행록」(燕行錄)이라 부르고 있다.〈연합〉 임기중 교수는 『연행별장을 보면 노론이었던 조영복에게 시문을 써준 인물이 이이명, 정호, 민진후, 신임 등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같은 노론일색』이라며 『이 별장을 통해 당시 조선집권층이 청을 얼마나 경멸했는 지가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연행록으로는 조영복보다 먼저 청에 다녀온 김창업이 남긴 「노가재연행일기」와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대용의 「담헌서」가 특히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