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를 파악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당대의 영화나 소설을 살펴 봐도 되고 히트치는 유행어만 따라 해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전화상담을 하다보면 전화선 안에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대충 감잡게 된다. 「여성의 전화」니까 여성들이 가진 고충과 문제들을 접하게 되는데, 상담의 주제도 세태에 따라 변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부부갈등, 아내의 외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특히 IMF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가정이 타의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접하게 될 때 직접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어 무엇보다 안타까움이 크다. 또 아내의 외도가 늘어난 것도 세태의 큰 특징이다. 게다가 외도상대를 만나는 방법도 색다르다.

 물론 남편의 외도가 있어왔으니 아내의 외도라 해서 안될 것은 없지만 외도를 하는 아내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전화방」이란 곳을 통해 상대방을 만난다거나 산행과는 관계 없이 산악회 회원으로 가입해 「뒤풀이」를 외간남자 만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상담을 해온 아내들은 외도상대와 어떻게 하면 헤어질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화방」을 통해서 남자를 소개받는 행위에 대해 정당함을 주장하며 「요즘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나요?」하며 반문한다. 도대체 왜 전화상담을 해왔을까 궁금하다. 이유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이 남편에게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상담원의 기본자세는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는 것이지만 이럴 경우 정말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준 그 분(?)과 영원히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는 내담자에게 아무 할 말이 없다면 무능력한 상담원일까?

권양녀ㆍ인천 여성의 전화 회원, 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