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 좌담회
▲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에 모인 시각장애여성들./사진제공=이지앤모어 공식블로그
▲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에 모인 시각장애여성들./사진제공=이지앤모어 공식블로그

한 달에 한번 가임기 여성이라면 찾아오는 불청객 '월경'. 여성들이 월경의 고통으로 보내는 시간 10년, 1인당 사용하는 생리대의 양 만해도 1만2000여 개. 비장애인 여성에게조차 고통을 안겨주는 월경이 시각장애 여성들에겐 넘어야 할 또 다른 장애이자 차별로 다가오고 있다. 인천일보는 시각장애 여성들의 월경권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과 대책 등을 짚어봤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 이리저리 만져보고 둘러보고 한바탕 시끌벅적 대화들이 오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기존에 패드를 대신해 사용하는 여성용품, 월경컵(생리컵)이 주제다. 대화를 나누는 여성들은 모두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됐다. 시각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월경 때문에 겪었던 고충들이 허심탄회하게 오간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와 여성용품 전문 쇼핑몰 이지앤모어가 시각장애인 여성들의 월경 제품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했던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 좌담회를 통해서였다. 좌담회는 영상으로도 공개됐다. 영상 공개 이후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 행사의 월경컵./사진제공=이지앤모어 공식블로그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 행사의 월경컵./사진제공=이지앤모어 공식블로그

“시각장애 여성들은 다양한 월경 용품을 접할 수 있었고 자신의 몸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됐다고 흥미로워했죠. 해당 영상에 큰 관심이 쏠리면서 시각장애 여성의 고충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강내영 대표도 저시력 장애를 앓고 있다. 강 대표에게도 월경권은 삶에 맞닿아 있는 문제였다.

“저 역시 저시력 장애가 있고 평소 월경 용품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이 많았죠. 현재 시각장애인들은 정보화 시대에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월경 용품과 같은 필수품의 경우 더더욱 정보를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각장애 여성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판단돼 좌담회를 마련하게 됐죠.”

좌담회는 평소 알기 어려웠던 시각장애 여성들의 고충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강 대표는 시각장애 여성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에게 박탈된 정보 접근권을 위해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내경 대표는 “점자가 부착되면 좋겠다는 의견은 예전부터 있었다. 생리대 제품들 브랜드 등 다양한 정보들을 시각장애 여성들도 알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장애가 있는 경우 뭔가를 함에 있어 인적, 물적 도움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장애인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해 구매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월경 용품에 대한 정보라든지 사용 후기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시각장애여성 한혜경·차예빈씨

"음성 지원 온라인 쇼핑몰 통해도 유통기한 표기 확인할 수 없어요"

한혜경님이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사진제공=한혜경님 SNS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온라인 정보 제공 소프트웨어 업체 ‘자유소프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한혜경(26)씨는 선천적 시각장애 여성이다.

그는 일찍이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씨는 13살 되던 해 미국에서 초경을 했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월경 교육이 이뤄졌다. 15살 때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교육기관이 아닌 주변의 도움을 얻어 월경에 대한 정보들을 학습해 나갔다.

“저는 월경을 겪으며 특별히 시각장애인이라서 불편을 겪진 않았던 것 같아요. 초경을 시작한 후로 여러 가지 생리대를 직접 써보고 경험하면서 저한테 잘 맞는 생리대를 찾으려 했어요. 크기별∙브랜드별로 사용해 봤기에 저에게 가장 적합한 생리대를 찾을 수 있게 됐죠.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오래전, 여느 때처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음성이 지원되는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생리대를 구매했다. 시각장애 여성들의 대부분은 오프라인 매장의 접근성 때문에 대개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한다. 온라인쇼핑몰에는 음성 지원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점자 없이도 크기나 브랜드 등을 선별해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구매한 생리대가 문제였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었고 가려워서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유통기한이 지난 생리대였어요. 온라인쇼핑몰의 맹점은 유통기한 표기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죠. 유통기한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기에 결국 온라인 구매도 사실상 꺼려지게 되더라고요. 더구나 시각장애 여성들은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도 만만치 않아 생리대를 전부 폐기해야만 했죠. 이 문제는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 여성들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라 생각해요.”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들이 온라인, 웹상에서조차 차별을 받게 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활동 중인 한씨는 생리대의 점자 도입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랐다.

“점자 도입이 보편화하고 확대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점자 문맹률이 상당히 높은 것도 사실이에요. 물론 시각장애인들 자신도 점자 학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보다 많은 시각 장애인 여성들이 오프라인 생리대를 이용하기 위해선 점자를 대신한 도형이나 기호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촉각마킹’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또 현재 NFC를 기반으로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기만 하면 음성전달이 되는 다양한 시스템이 개발 중이다고 하는데 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시각장애인들의 많은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차예빈(35)씨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7년 전 뇌출혈 수술을 받은 뒤로 시력을 잃었다. 중학교 2학년 초경을 시작할 당시 비장애인이었던 차씨는 보건교육과정을 통해 생리대 착용법을 비롯한 구체적인 성교육 학습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얻은 직후 처음 겪는 월경 당시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감각에 의존해 더듬더듬 생리대를 착용하는 것까진 둘째 치더라도 생리대를 오프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것은 시도조차 못 해봤죠. 대개의 시각장애 여성들은 대량의 생리대를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프라인 생리대에는 점자가 새겨 있지 않아 크기며 개수며 어떠한 정보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는 편입니다.”

항상 챙겼던 생리대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날은 주변 편의점 등을 찾아 생리대를 사야 하지만, 점원 직원이 남자인 경우 요청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차예빈씨는 “당장 급할 땐 편의점에서 사야 하는데, 남자 점원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또 손으로 크기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며 “다른 것보다 크기 정보만이라도 점자로 새겨져 있었다면 시각장애인 여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경기도의회 문경희 부의장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불합리 겪는 일 없어야"

경기도의회 문경희 부의장. /사진제공=문경희 의원실

경기도의회가 여성장애인을 지원하는 조례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본보는 지난 15일 문경희 도의회 부의장을 만나 여성장애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각과 대안에 관해 물었다.

문 부의장은 “도에도 여성장애인을 지원하는 조례나 사업들이 있지만, 여성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며 “경기도 여성장애인 지원조례안(가제)”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 사업과 그 밖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여성장애인의 출산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을 생각하고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조례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논의가 있을 예정이고, 시각장애 여성의 월경 고충 등의 내용을 포함해 여성장애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생리대에 점자 표기가 없어 원하던 생리대를 제대로 구매하지 못했던 한 시각장애 여성의 일화를 본 적이 있다고 밝힌 문 부의장은 모든 여성이 누려야 할 선택권이 박탈된 것이라며 점자 도입 등을 확대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한 생리대 제조회사가 점자 스티커가 표기된 자사 제품을 이용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월경 교육을 진행하거나 점자를 도입한 생리대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판매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기업의 이런 행보들이 지금은 사회공헌 프로젝트나 일시적인 크라우드 펀딩이지만, 앞으로 다른 기업들도 함께해 점자 생리대가 우리 사회의 표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경희 부의장은 “장애인을 위한 환경과 제도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은 존재한다. 여성장애인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라며 “출산과 양육 중심의 지원 정책을 넓혀 여성장애인 삶의 전반적인 어려움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함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관련기사
[차별없는 월경권, 인천일보 기자 체험기] 손끝 의지한 그날, 생리대 사는 것도 막막 눈을 가렸다. 사방의 빛을 차단하자 눈앞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온몸의 감각이 청각에 쏠렸다.시계 초침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18일 오전 수원의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5000원짜리 등산 스틱을 샀다. 눈을 가리고 이동할 때보다 스틱을 쥐고 이동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마트 초입에서 오로지 청각과 스틱에 의지한 채 생리대가 놓인 곳을 찾아 이동했다. 한 걸음 떼기가 막막했다. 점자 블록이 없는 공간에서 생리대 위치가 있는 곳까지 혼자의 힘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주변의 도움을 얻어 생리대가 있는 위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