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은 극동지역에서 구(舊) 소련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이들을 일컫는다. 스탈린 정권은 1937년 고려인 사회에 일본 첩자들이 침투하는 걸 막는다는 구실로 연해주 등지에 살던 고려인들을 추방했다. 18만여명이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6천여㎞를 이동한 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버려졌다. 이동 중 굶주림과 추위 등을 못 넘기고 목숨을 잃은 이들이 무려 2만여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이주했지만, 고려인들은 특유의 노력과 끈기로 척박한 땅을 개척해 벼·목화 등의 농사를 지으며 빠르게 정착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15개 신생 독립국이 탄생하면서 고려인들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소련 당국의 인정을 받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했던 고려인은 대부분 타격을 입었다. 특히 언어 문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했고, 고려인 입지는 점차 약화했다. 상당수는 러시아 연해주로 재이주했고, 모국인 한국행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온 고려인들의 생활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 안타까움을 준다.

인천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연수구 함박마을(연수1동 514 일원)이다. 현재 이곳의 고려인은 공식 통계를 제외하고 7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재외동포나 다름 없지만, 그 자격을 누리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실정이다. 한국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들은 주로 건설현장과 공장 등에서 일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국 최초로 고려인 주도 조직이 탄생해 눈길을 끈다. 지난 17일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창립' 행사가 열린 것이다. 각종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응할 고려인 주민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주민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주민회는 함박마을에 사는 고려인의 권리를 대변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여론을 모으려고 한다. 기구한 삶을 뒤로 하고, 한국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가상하다. 이들은 고려인 엄마·청년모임·상인회·할머니봉사단 등을 주축으로 권리 회복과 도시재생 사업 등에 목소리를 높일 참이다. 과거의 쓰라림을 잊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당국에서도 고려인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지원하기를 촉구한다.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