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에 대한 용기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말이었다. 비가 촉촉하게 내린, 그래서 적당히 머금은 수분을 내뿜는 흙냄새가 여간 상쾌한 게 아니었을만큼 만개한 꽃무리로부터가 아닌 흙으로부터의 봄의 향기가 차올라 코끝을 자극한 주말의 아침. 창문을 열고 한참을 깊게 호흡하며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어찌나 편안하고 좋던지. 파란색 하늘이 아닌, 적당히 물감이 흐트러져 버린 듯한 검회색 빛깔의 하늘이 오히려 차분하다. 역시 월급쟁이 들은 주말이 소중하다. 세수조차 할 필요없이 오전 늦도록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좋고, 브런치로 한 시간 남짓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것 자체가 호강이라 여겨질 만큼 좋다. 소상공인들처럼 밤낮없이 일하시는 분들께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부활절을 기념하는 칸타타 공연을 온라인으로 감상했고, 바하의 무반주 첼로 연주도 시종일관 온 방안에 흐르도록 했다. 작은 공간에서 혼자 누릴 수 있는 행복. 이 같은 날은 흔치 않다. 특별히 지난 주는 모처럼 일의 양이 많았던 터라 비로소 나이 들었음을 확인하듯 잠도 많이 자야만 했다. 그 넉넉한 휴식! 역시 쉼은 삶의 필수 요건임을 알았다.

오후가 되면서 거의 반 년 동안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친구의 방문이 있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공무원으로 일을 해서 이른 나이에 제법 연륜이 있는 친구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 지 작년 추석에 잠깐 얼굴을 보았는데, 그 동안 연말의 분주함으로 겨울을 지나 해를 넘기고 봄이 되어서야 만났다. 경쾌하고 즐거운 대화. 일과 연관되어 벌어진 일들, 남편과 아이들을 둘러싼 자잘한 일상의 얘기들, 아울러 주변 인간관계로 빚어지는 껄끄럽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등을 나눴다. 사실 특별한 해결 방법이 달리 있을까마는, 기본적으로 각각의 인생을 홀로 책임을 지고 가야함에는 동의했다. ‘우리’ 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함께 삶을 나누며 살지만 일정한 나이에 도달해 성년이 된 자식들의 경우 그들의 라이프를 스스로 그려나가야 할 것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을 미루어선 안된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용기 뿐 아니라 홀로서기를 해야할 책임에 무엇보다 부모 스스로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물 한살의 내 막내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내 말에 그녀는 똑부러지는 조언을 했다. 그 아이가 훨씬 더 의젓하게 자기의 삶을 지켜갈 거라는 용기를 주면서 말이다. 하긴 그 아이는 독립하면서 한 푼의 금전적 지원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걱정말라는 위로를 대신 보냈다. 하긴 엄마가 지지부진 아이와 연결된 끈을 붙잡고서 혼자만 힘들어 하는 걸 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내 마음을 헤아리거나 신경조차 쓰지 못할게다. 항상 나 혼자서 짝사랑 하며 전전긍긍 기다리고 눈치보기에 급급하니까. 어쩌다 내가 보낸 문자에 답장을 해주면 좋아서 헤벌쩍하니 고마워하는 모습이라니. 큰 딸이나 둘째 아들은 이런 내 모습에 도리질을 한다. 제발 엄마 먼저 챙기세요, 하면서 말이다. 글쎄 그래야 하는데 좀처럼 막내에 대한 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토마토 한 박스, 딸기 한 묶음, 커피와 케익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방문한 그녀와 한바탕 수다를 펼치고 난 다음, 나는 서울에 만남이 예정돼 있어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봄비가 내리는 주말, 그것도 저녁으로 접어든 도심의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이다. 송도에서 서울까지의 버스 이동 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지하철과 달리 광역버스로 곧장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음이 편리하다. 우산을 쓰고 불빛 모자이크를 바라보며 강남거리를 걷는 것, 추억의 한 갈피에 남아있을 게다. 4월의 첫 주말은 봄비와 함께 이렇게 지났다. Well done and beautiful!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