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흥미롭게 보는 시청자 중 한명이다. 미세먼지 걱정으로 답답한 도시는 물론 팍팍한 직장 생활을 정리한 채 외진 곳에서 사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에서 더덕이며 버섯을 뜯어 밥을 지어먹고 산속 개울에 몸을 씻으며 자연의 순리대로 자유롭게 사는 듯한 출연자의 생활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나는 언제 저런 삶을 살아보나 하는 부러움에 인터넷을 통해 전국 각지를 둘러보곤 한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자연인은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니더라.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땅이다. 자연인이라는 사람도 몸을 담을 수 있는 움막이라도 지을라치면 제 명의의 땅은 있어야 한다. 뒷산에 열린 버섯이나 산삼도 자기 땅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면 소유자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자연인이 되고 싶다면 땅 소유는 필수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유자적 살 것만 같은 자연인에게도 땅 소유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LH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로 연일 뜨겁다. 고급 정보를 활용한 그들만의 투자 아닌 투기가 일반 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LH직원 부동산 투기 폭로가 터진 지 한달이 지났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가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며 부당이득의 3∼5배를 환수한다고 나섰다.

서울·부산 재보선 선거 악재로 LH직원 부동산 투기가 거론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에 대한 무한 신뢰는 어디 LH직원 뿐이던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중에 강남 등 소위 알짜배기 지역에 부동산 없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올해 재산공개 대상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1885명의 신고재산 평균은 14억1000만원이다. 10명 중 8명은 평균 1억3000만원이 늘었다. 주택 공시가격과 주가 상승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회의원 298명 중 247명(82.9%)의 재산이 1년 전보다 증가했다. 재산이 1억원 이상 불어난 의원은 168명이다. 10억원 이상 늘어난 의원이 9명, 5억원 이상∼10억원 미만 18명, 1억원 이상∼5억원 미만 141명,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 46명, 5000만원 미만 33명 등이다.

이쯤 되면 재산이 있어야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 가능한 분위기다. LH직원들의 투자 아닌 투기가 끝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투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저마다 상상만 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저 멀리 갔으며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목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목 좋은 부동산 하나 가지고 있으면 하루아침에도 재산가치가 수천만원씩 오를 수 있다. 빡빡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책없는 내 노후를 위해 저금리를 발판삼아 부동산으로,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번 LH사태는 좀 더 명확한 시그널이 됐다. 집 한 채면 된다고 요란을 떨었던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들도 집 한 채 이상 더 갖고 있지 않았던가. 또 강남 등 똘똘한 지역에 있는 부동산은 처분 대상도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의 확고한 재테크 신념이 확인된 데 이어 LH직원들의 투기까지 드러난 만큼 오히려 서민들의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히려 한 채 뿐인 집의 재산가치를 높이겠다는 서민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내 집을 위해 지역별로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는 카페를 만들어 각종 민원을 집단 제기하고 GTX, 지하철 등을 연결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가진 집 한 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이 움직임은 그야말로 안쓰러운 노력이다. 누가 이를 지역이기주의라 폄훼할 수 있을까.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0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16만명이었던 부자 수는 지난해 35만4000명으로 10년만에 2.2배 늘었다. 이들 부자의 재산에서 거주 주택, 빌딩과 상가 같은 부동산이 56.6%였다.

이 정도면 부동산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집 한 채 가격에 일희일비하는 시민들의 집값을 떨어뜨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집값을 올리기도 난감한 것이 현실이다. 고급 정보 없이 집 한 채 가격 상승에 열을 올리는 많은 시민에게는 답이 없다. 강남 등 재산가치를 높여줄 비싼 땅이냐, 산속 저렴한 땅이냐가 문제일 뿐. 결국 도시인이든 자연인이든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이 답이라는 씁쓸한 결론이 남는다.

 

/이은경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