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는 코로나가 막은 가족 상봉 때문에 명절 때나 모이던 가족 모임도 줄어 명절 기분도 덜 나서 섭섭하기도 했고 대신 며느리들과 취업준비생의 명절 스트레스가 줄었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라 기대가 있기 마련이다.

명절까지를 시한으로 기다리는 많은 사람 중에 해고노동자들도 있다. 주로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은 보통 연말에 해고되는 일이 많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고일 때 노동자들은 모여서 투쟁하기 마련이고 가장 추운 1월에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필자도 수년 전 연안부두에서 해고된 조합원의 일인시위를 1월1일부터 한겨울 내내 지원했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찌나 추웠던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꺼운 외투를 보면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 많은 해고들 중에 설 전에 꼭 해결되었으면 하던 일이 있었다. 김진숙이라는 흔한 이름의 베이비붐 세대의 여성노동자의 복직이 그것이다. 1980년대 초반, 남녀의 직업 차이가 지금보다 더 심했던 시기에 용접을 배워 조선소에 취직했던 여성노동자. 여성노동자가 일할 조건을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을 현장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을 것이다.

'YES, YOU CAN!'의 포스터가 딱 맞을 이미지의 그이가 1986년 현장노동자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써서 대공분실로 연행되고 그 때문에 무단결근으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다. 1986년 이래 우리 사회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1987년 민주화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에서 2016년 촛불투쟁까지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국민들이 일어섰고 정치적 요구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무수한 변화속에서 회사도 멀쩡히 남아 있는데 왜 김진숙만 복직되지 못했나? 왜 대기업 정규직의 민주노조들은 그동안 수많은 남성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했던 그이를 해고자로 내버려 두었나? 왜 정년을 하루 앞두고 김진숙이 걸으며 복직을 요구하게 하였나? 그리고 무엇이 무서워 암에 걸린 여성노동자 한 명을 35년이나 해고자로 남겨두는가? 1980년대 초의 엄혹한 시기에 용접공으로 잘 살아보려고 했던 선구적인 여성노동자를 해고자로 놔둔 우리들은 지금, 전 세계 자살률 1위인 20~30대 여성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 질문을 되뇌었다. 설 전에 이루었으면 했던 김진숙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따뜻하게 손잡아 줄 줄 알았던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설을 놓쳤지만 봄에는 꼭 그이의 '웃으면서 투쟁'이 '복직으로 웃음'으로 바뀌기를 기원해본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지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