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여기 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맡겨불고. 가셔 가지고 저놈들 거짓말, 속시원히 까발려 주시오”

2017년 1200만명 관람객을 넘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나오는 한 장면이다.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이 전남 도청 앞에서 계엄군에 의해 시민 학살이 벌어진 직후 취재차 광주를 방문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말이다. 평범한 대학생 구재식(류준열)은 독일 기자에게 광주의 진실을 꼭 알려달라는 말을 남겨놓고 길거리에서 숨진다.

관람객 1200만명을 따져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1가구당 1명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셈이다. 그 만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기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당시 고립무원에 놓인 광주 현장에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실제로 없었다면 광주의 진실이 국내외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일에 충실한 한 독일 기자가 보여준 모습은 국제적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 준 역사적 단면이다.

지난 2월1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버마 랑군(양곤)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한 달 넘게 재연되고 있다. 외신은 연일 버마의 황태술과 대학생 구재식과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맞서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SNS)가 발전한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6시간쯤 떨어진 버마는 1983년 전두환이 버마 랑군을 방문할 당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아웅산 폭파 사건으로 국내에 알려진 나라이다.

1962년 군사 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장기 집권해오다가 19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민간정부와 군부가 불안한 동거를 해왔다. 이후 지난해 11월 총선에 참패한 군부가 지난 2월1일 병력을 동원해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을 체포하고 정부의 주요 시설을 장악했다. 이에 저항하는 국민을 군부가 유혈진압에 나서면서 한달 넘게 버마 랑군이 피의 도시로 물들어 가고 있다.

지난 2일 소모뚜 주한 미얀마(버마) 노동복지센터 운영위원장, 얀나잉툰 민족민주연맹(NLD) 한국지부장 등 '미얀마 군부독재 타도위원회' 관계자 6명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찾았다. 이들은 “군부정권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경기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군부 만행의 종식을 위해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다.

<인천일보 3월3일자 보도>

참고로 경기도엔 현재 전국 미얀마 출신 등록 외국인 2만4985명 중 약 45%가량에 달하는 1만1305명(2020년 12월 말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버마(미얀마)는 40여 년 전 5월의 광주”라며 “인권의 보편적 가치라든지,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인의 열망을 비춰 보면, 국민 스스로 만든 정부를 무력에 의해 전복하고 군사정권 지배체제로 만드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인류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에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지방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며 “버마가 신속하게 민주 체제로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버마 국민과 함께 하겠다는 이 지사의 연대가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지난 3일 버마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군경의 총격에 사망한 '에인절'(Angel) 또는 '치알 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9세 여성을 보면서 영화 속 대학생 구재식과 택시운전사 황태술을 떠올리게 된다.

“가셔가지고 저놈들 거짓말 속시원히 까발려 주시오”라는 황태술이 독일 기자에게 한 영화속 대화가 국제적 연대를 호소한 의미라는 것을 되살려 본다. 광주에는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있었다면 버마에는 국제적 연대의 이름으로 광주의 역사 승리를 경험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필자도 버마 국민과 함께하고 군사 정권에 저항의 의미로 군사정권이 국가 호칭을 독단적으로 개정한 미얀마가 아닌 버마라는 표현을 썼다.

사망할 당시 19세 여성 에인절의 티셔츠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 국제적 연대의 힘으로 그날이 오기를.

 

/김기원 경기본사 문화체육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