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숨어들었다. 오늘날 가난은 눈에 확 드러나지 않는다. 거리에는 외제차가 즐비하고, 명품이라 불리는 잡화나 옷가지 하나 정도는 대부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통계청 조사 결과가 의심 될 정도다.

도시에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들. 아파트 한 채에 수십, 많게는 수백 가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확히는 저 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르다. 아파트가 뿜어내는 화려함과 안락함을 얻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허덕이고 있는 그 궁핍함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과거의 가난은 눈에 띄었다.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판자촌이라 불리기도, 달동네라 불리기도 했다. 인천 남동구 광학산 아래는 무허가 판잣집이 뒤섞여 있던 대규모 달동네였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우리사회가, 정치가, 행정이 가난을 건져 올리기 위해 취했던 대표적인 방식이 도시정비사업이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불리는 사업이다. 광학산 아래 무허가 달동네 역시 도시정비구역(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지정돼 2013년 6월 현재와 같은 3600여 세대가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됐다.

도시정비사업은 가난의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하지만 가난이 지워진 것과 해결된 것은 다른 문제다. 인천 부평구 한 재개발 구역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이사 좀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하소연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두 번이나 쫓겨나 여기로 이사 왔는데, 알고 보니 여기도 재개발 구역이네요. 저희 같이 없는 사람들이 방 얻을 만한 곳은 이렇게 다 재개발한다는 동네더라고요. 재개발, 그거 돈 없는 사람들한테는 떠나라는 얘기에요.”

도시정비사업은 가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난의 공동체를 파괴했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과 핵심에서 가난을 몰아냈을 뿐이다.

지난달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정책으로 '공공 재개발·재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민간이 주도하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공공이 적극 개입해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정책이다. 가난을 몰아내는 것에 불과한 정비사업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전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동구 한 재개발 구역에서 세입자로 살며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한 젊은 남성을 만났다. 재개발에 회의적인 그가 말했다.

“저희 마을은 참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인데 재개발로 없어질지 몰라요. 가난한 사람들도, 나이 든 어르신들도 편히 살 수 있는 마을들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어떤 유명한 지식인들보다 통찰력 있는 그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창욱 탐사보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