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솔귀뚜라미.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2002년 대한표본연구소 소장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불빛에 날아온 초록색 곤충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 들어보는 종이였지만 아마도 여치 쪽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내가 여치 연구를 하는 것을 알고 도움을 주고자 하신 소장님의 배려였다. 전화상으로는 감이 오질 않아서 생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택배로 살아있는 개체들을 받고 보니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초록색 귀뚜라미였다.

“남쪽에 사는 종은 자주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특색있는 종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에 사는 유일한 초록색 청솔귀뚜라미 같은데 아마도 미기록종이 아닐까요?” 이런 통화를 한 이후 정확한 근거가 필요하여 문헌을 뒤져 보았더니 이럴 수가! 북한에서 1969년 출판된 곤충분류명집에 이미 '푸른씩씨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기록종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실체를 확인한 정도에 머물러야 했다. 일본 자료를 참고하면 청솔귀뚜라미는 당시에 전혀 알려지지 않아 일본에서 신종으로 기재하지만, 1898년 동경의 가로수에 침입한 외래 곤충으로 원산지는 남중국으로 추정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어떤 경로든지 근래에 침입한 외래 곤충일 가능성이 있었다.

청솔귀뚜라미는 완전한 초록색이라 얼핏 보면 여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귀뚜라미는 검은색으로 칙칙하고 밤중에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습성이 있지만, 이렇게 초록색으로 나무 위에 산다면 여치의 습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리의 발목마디 수가 귀뚜라미과는 3마디, 여치과는 4마디로 크게 구별되고 날개를 겹치는 방식도 서로 정반대이기 때문에 귀뚜라미과에 해당한다. 청솔귀뚜라미 무리는 동남아시아 열대지방에 종류가 많으며, 바닥 생활하는 기본 특성으로부터 나무에 기어오르는 방식으로 적응방산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솔귀뚜라미를 사육하면서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녹음해두었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있어 일일이 보고 확인하기는 어렵고 울음소리를 정확히 알면 서식 여부를 간단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제주도 동백동산을 조사하면서 나무 위에서 울고 있는 수컷을 직접 붙잡아 실체를 확인했었고, 어두운 숲속에서 나무껍질에 산란 중인 암컷도 채집했다. 이전에 제주도 기록은 없었지만, 울음소리를 모니터링했을 때 곳곳에 개체수가 많은 지역이 있었다. 특히 이들은 날개가 길어 잘 날 수 있어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가로수에 많이 모여서 울음소리를 냈다. 이후 인천 용유도, 경남 지리산, 경기도 양평, 서울의 생태공원 등지에서도 청솔귀뚜라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쁜 생김새와 뚜렷한 울음소리의 특징으로 최근 청솔귀뚜라미를 인공 사육하여 애완곤충으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과학 데이터를 확인하면 근래에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나무 위에 사는 습성 때문에 가로수나 정원수의 이동이나 도로를 따라서 남부지방으로부터 서서히 서식처를 넓혀 나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후변화로 평소 보기 힘들었던 남방계 곤충을 점점 쉽게 보게 되는 것은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 아니면 걱정해야 하는 일일까?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자원과 환경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