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공유냉장고 4호점 '우리샘갈비'
반찬·흰쌀 등 주민 도움에 차곡차곡

표대진씨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신성자씨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죠
자주 오는 분 안 오면 집 찾아갑니다”
▲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수원 공유냉장고 4호점 앞에서 운영을 돕고 있는 신성자(77)씨가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왼쪽). 신성자(77)씨가 주민 표대진(85)씨에게 반찬을 넣어주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흔하게 벌어졌던 기부 형식의 나눔 실천이 '공유'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누군가의 선행으로 이뤄진 나눔이 아닌 서로 함께 공유하며 더불어 사는 방법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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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찾은 수원 권선구 서둔동은 전형적인 구도심의 모습이었다. 대부분 주민이 일터로 나간 마을은 한적한 거리에 여유가 느껴졌다.

마을 한쪽에 있는 식당은 점심 손님을 맞을 준비에 부산했다. 잠시 기다리자 어르신 한 분이 플라스틱 반찬통이 가득 쌓인 쟁반을 들고 나왔다. 반찬통은 식당 앞에 있는 냉장고로 옮겨졌다. 비어있던 냉장고 안에는 감자튀김과 멸치볶음, 마늘종볶음, 콩나물볶음 등 각종 반찬이 차곡차곡 쌓였다. 아래 칸에는 비닐봉지에 넣은 순두부찌개와 흰쌀로 채워졌다.

이 곳은 수원 공유냉장고 4호점이 있는 '우리샘갈비' 앞이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음식을 넣고 누구나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냉장고다. 수원시에는 지난 2018년 1월 1호점이 생긴 후 벌써 24호점까지 늘어났다.

공유냉장고 앞에는 넣을 수 있는 음식과 불가능한 음식이 적혀있다. 채소나 식재료, 반찬, 통조림 곡류, 음식점 쿠폰 등은 공유할 수 있지만,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약품, 건강보조식품 등은 넣을 수 없다.

우리샘갈비는 공유냉장고에 들어가는 음식의 운영을 맡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넣는 음식이 잘 소분돼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그래서 음식도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넣어두고 있다. 이 시간이면 주변에 사람들이 붐빈다.

이날에도 혼자사는 주민 표대진(85)씨가 공유냉장고를 찾아왔다.

표 씨는 “아내가 병원에 있으니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게 참 귀찮고 어려운 점이 많아요. 석 달 전부터 공유냉장고를 알고 다양한 반찬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음식이 생기면 함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같은 날 수원 팔달구 고등동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공유냉장고 12호점 문을 열어봤다. 김모씨와 공유냉장고 운영자 윤완기(71)씨는 서로 안부를 물었다.

김모씨의 “오늘은 무엇이 있는지 한번 열어봤다”는 말에 윤씨는 “하나만 들고 가세요. 다른 분도 먹어야죠”라고 당부했다.

처음에는 공유냉장고 운영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1인당 1개 규칙을 어기고 많이 가져가기도 했고, 몇몇 사람만 음식을 넣는 등 공유하는 법이 익숙지 않았다. 12호점에도 처음에는 빵집을 운영하는 주민과 운영자만 음식을 넣었고 나머지는 가져가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공유의 의미를 알아갔다. 한번 공유 받은 주민은 자신도 공유를 시작했다. 채소장사를 하는 주민은 새벽에 좋은 물건을 얻으면 항상 공유냉장고를 채워뒀고, 요리를 좋아하는 주민은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한다.

공유냉장고로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로 재탄성하는 과정이었다. 공유냉장고 앞에는 파란 동그라미 바탕에 '우리동네'라는 글이 쓰여 있다.

4호점 운영을 돕고 있는 신성자(77)씨는 “매일 20~30분이 공유냉장고에서 음식을 가져가는 것 같아요. 자주 보이는 분이 나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집에 찾아가는 버릇도 생겼어요”라며 “이럴 때일수록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야죠”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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