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군인처럼 하루 24시간도 짧다

발끝까지 꽁꽁 싸맨 보호복 입고
인천 전역서 들어온 검체와 사투

회의실에 간이침대·컵라면으로
매일을 240시간처럼 쓰며 버텨
▲ 인천보건환경연구원 2층 코로나19 진단검사실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검사요원이 진단검사를 위해 검체를 옮기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싸늘하다. 금세 뭐라도 쏟아질 듯 하늘이 울상이다.

인도에서 단 5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순간 온몸이 경직된다. 문 앞 경고 문구가 뇌리에 박힌다. 빨간색의 '출입통제' 알림 글에 발길이 멈췄고 '세상에 급하지 않은 검체는 없다'는 글에 공포와 경외감이 공존한다.

“코로나19 전쟁의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인 인천보건환경연구원 앞에 서 있지”라며 마음을 고쳐먹고, 옷매무새를 바로잡는다. 생존을 건 싸움판, 소리 없는 총성장에 365일 24시간 몸을 내던진 그들을 만나러 갔다.

출입구에서 코로나19 간이 검사를 마친 후에야 연구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만일 인천보건환경연구원이 코로나19에 노출된다면 지난 1년 경이롭던 인천의 코로나19와의 사투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2층에 올라서자 코로나19 검체를 인수하는 곳이 분주하다. 5분도 안 돼 인천 각지에서 온 보건소 직원과 병원 관계자, 응급구조대원들이 검체를 옮겨 놓는다. 순간 백 여건의 검체가 쌓였다. 하얀색 가운을 걸친 연구원들의 분류 작업 손놀림이 날렵하다.

**보건소, **병원, **구청에서 보낸 코로나19 검체 인수증과 (신종감염증증후군) 검체 시험의료서에는 전달기관과 검체건수, 인수시간, 인계자 등이 적혀 있다. '발열, 인두통, 구토' 등이 적힌 담당의사의 소견도 덧붙여 있다. 이제부터 이들 검체는 2746~2779번 등 번호로 불린다. 한 연구원의 걱정스러운 혼잣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은 괜찮은데, 어째 낌새가 불안해.”

오성숙(43) 연구사는 “**구청 전수조사 때는 2000건이 넘는 검체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현재까지는 연구원이 버틸 만하다”고 귀띔했다.

이들 검체는 생물안전3등급(Biosafety Level 3, BL3) 연구시설로 옮겨진다. 국가기관을 빼면 인천서 유일한 시설이다. 취급병원체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고위험 병원체(탄저균, 페스트균, 브루셀라균 등)와 바이러스(코로나19, 중증급성호흡기 증후근 등)다. 고위험 병원체의 외부 유출방지를 위한 음압 시스템으로, 이 시설 안에서는 절대 밖으로 병원균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보호복과 고글을 한 채 10분도 버티기 힘들지만, 연구사들은 검체와의 싸움을 위해 온종일도 마다치 않는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도, 그들 손에 들린 검체들은 미세한 흔들림 없이 검사가 이뤄진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세상이 발칵 뒤집힌 지난해 상반기보다는 나아졌다.

코로나19의 특이점도 몰랐고 백신은커녕 치료약도 없던 그때, 매시간 수 백~수 천 건의 수북한 검체가 촌각을 다투며 결과만을 기다렸다.

연구원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검사에 검사를 벌였다. 잠자고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사치였던 그 시절을 버텨낸 후에야 지난해 말 12명의 연구원이 보강됐고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많아지며 검체 검사도 수월해졌다. 외부 사설 기관에서의 코로나19 검체 검사도 진행 중이다.

그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발길을 옮겼다. 분명 푯말에는 대회의실이라고 적혀 있고, 두 줄로 깔끔하게 테이블이 놓였건만 사이사이 군용 간이침대가 자리했다. 그 위로 온기를 뺏긴 이불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평소 커피와 다과 등이 있어야 할 실내 한 귀퉁이에는 일회용 컵라면이 종류별로 산을 이뤘다. 마침 한 연구원이 회의실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맥이 빠진 채 축 늘어진 모습에서 '지쳐 보인다'는 표현보다는 '버틸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연구원들 표정은 어둡지 않다. 각자가 버팀목이 돼 동료를 지탱하기에 힘들어도 이겨내며 24시간을 240시간처럼 쪼개고 쪼개 검체 분류에 여념이 없다. 복도 끝 창문 너머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2021년 2월3일 입춘에 내리는 이 눈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이길 바라며 길고 긴 코로나19도 함께 끝나길 소망한다.

그들의 한결같은 마음인 '마스크를 벗고 환한 미소로 악수를 나눌 그 날까지'.

/이주영·김원진·이창욱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