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캐다 왼발에 덜컹
폭발과 함께 정신 잃어
또 다시 발생할까 우려
아내 스스로 세상과 작별
나 같은 피해자 또 없길
▲ 지뢰 피해자 김석영씨가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경성대 사진학과 김문정 교수

# "당신도 지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 더는 나와 선 안됩니다”

남북 분단의 땅에 불안전한 평화의 싹이 트고 있지만 아직도 우린 전쟁의 상흔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산다지만 역사 속 한 페이지에서나 보던 지뢰 폭발 피해를 김석영(47)씨 본인이 겪을 거 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12월 연천에서 열린 '인생나무 인생사진전'에 참가한 9명의 지뢰피해자 가운데 가장 최근에 피해를 입었다.

2016년 5월22일, 김씨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하던 그 날, 시련의 검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쫓아오고 있었다.

“종종 봄이 오면 산나물을 캐러 가는 장소였죠. 여느 때처럼 그날도 나물을 뜯으러 그곳을 찾았습니다. 한창 바구니 한 가득 나물을 캤을 즈음, 왼발에 무언가 밟혔다는 생각이 들었죠. 발을 떼는 순간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곧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짧은 순간, 지뢰를 밟았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치더라고요.”

주변에서 흔히 보아 온 평범한 전원의 풍경이었다. 사고 당시, 폭발 장소 주변으로 출입을 저지하는 철조망이나 지뢰 매설을 표시하는 위험 안내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철조망이나 위험 표시가 있는 지역에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죠. 아마 지뢰 위험을 안내하는 상황이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엔 미확인 지뢰 지역으로 확인됐고 일대에 대한 수색이 들어갔죠. 더 놀라운 사실은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뢰는 제거되지 않았고 달랑 철조망 하나 쳐 놓는 정도로 끝이 났죠. 저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할까 봐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쓰라린 사고는 김씨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한없이 밝고 긍정적이던 김씨는 술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그러던 때, 김씨와 별거 중이던 아내가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연락해 왔다.

“아내와 잦은 다툼으로 별거를 했었고 아이들도 아내를 따라 저와는 떨어져 지냈었죠. 제 사고 소식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졌고 이 소식을 들은 아내와는 8년 만에 만나게 됐습니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불행의 씨앗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저를 찾아와서도 줄곧 사고가 당신의 탓으로 여기며 미안해했습니다. 평소 앓던 우울증이 극심해졌고, 아내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죠.”

김씨는 절망했다. 모든 원흉이 지뢰 피해 때문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날 나물을 캐러 가지 않았더라면...', '지뢰를 밟지 않았더라면...' 끝도 없이 몰려드는 죄책감이 그를 사지로 몰았다.

“어려운 형편에 빈소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러야 했죠. 장례를 치르던 날, 딸아이가 제가 하는 행동을 따라 차가워진 엄마의 시신을 쓰다듬으며 왜 이렇게 차갑냐고 묻더라고요. 그땐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김씨는 그렇게 또 술에 의존한 세월을 보냈고 지금도 여전히 그날의 악몽들이 떠올라 우울증약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평화나눔회였다. 그의 재활을 돕고 지뢰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전에 참여해 줄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김씨는 지난 2020년 12월 연천에서 있었던 인생사진 인생나무전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고 있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려웠죠. 막상 참여하고 보니 저와 같이 고통받는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뢰 피해자들에게 위로도 많이 받았죠. 그러면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제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나오지 않길 바라며 저는 세상 앞에 당당해지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