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아얏,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순간 느껴지는 예리한 아픔! 그리 덤비지도 않았는데 작은 칼날에 그만 손을 베었다...이게 뭐람. 마침 상처 부위가 항상 물이 닿아야 하는 손가락 마디인지라 이번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듯 싶다. 그러고보니 내 손이 참으로 엉망이다. 아무리 얼굴에 에센스다 로션이다 바르고 가꾸면 뭐하랴. 정작 손등을 보니 이리저리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걸. 굵게 드러난 핏줄은 지렁이보다 더 흉칙하게 스멀거리고, 검은 반점이 작은 모양으로 주근깨처럼 흩어진 모양새이다. 게다가 여기저기 화상자국, 이것들은 반찬을 만든다거나 음식을 요리하면서 생겨난 것인데, 역시 거친 손모양에 한 몫을 더한다.

엄마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가정의 잡다한 일에 일차적 책임과 의무를 지녀야 하니까.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을 홈스위트홈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더불어 청소 및 정리정돈도 해야한다. 결혼 전날, 친정엄마는 내게 시금치 한 번 다듬어 보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혀를 쯔쯧 차시면서 “어떻게 하니 이것을. 시금치도 다듬을 줄 모르는데 결혼을 한다니..” 난 냉큼 받아치면서 “가르쳐주면 금방 하지 뭐, 공부가 어렵지 이런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철없는 소리를 하면서 난 결혼을 했다. 미국이라는 환경에 너그러운 시어머니여서 힘든 결혼생활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음식을 만드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청소도 마찬가지. 친구들은 우리집을 방문하고 나서 항상 돌림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그렇게 정돈을 못하고 사는 지 몰라. 쫓겨나지 않으려면 청소를 하던지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키던지 해라” 이렇게.

아이 낳기까지 걸린 기간은 10년. 그 이전엔 학교에 다니면서 가게 일을 함께 했다. 졸업하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때 비로소 엄마라는 책임과 집안일에 대한 의무가 시작된 셈이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중심이 아닌 삶을 살기 시작했다. 급하게 일어나던 감정의 물결을 다스려야만 아이를 키우면서 맞닥뜨리는 긴박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아이가 다칠까봐 정리정돈을 해야만 했고, 어릴적 추억은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냄새가 큰 역할을 한다고 믿으며 계절 혹은 명절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성정이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성격의 변화는 찾아왔고, 솜씨가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해도 가족들과 집에서 나누는 부엌문화는 제법 이루게 된듯 하다. 그렇게 나는 엄마로서 해야하는 일들에 기꺼이 감사하며 적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엄마라는 지위에 씌워진 역할에 긍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엄마, 어머니라는 타이틀에는 희생이 강요되는 듯한 일반적 인식이 그것이다. 결혼하면서 보통의 여자는 본인의 이름 대신 누구의 엄마로 불리우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양보하고 삶을 내어줘야 아름답다는 인식. 심지어 한복 차림으로 구진 집안일들을 하고 있는 형상이 마치 전형적인 어머니 모습이고, 화장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어떤 역할이건 때에 따라 열심인 모습 자체로 형상화되어 인식되는 게 맞고, 어느 한 편의 모습이 강조되면 불균형으로 오는 상처가 있게 마련이다. 비록 그 상처가 각각 개인의 환경에 따라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물게 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2021년이 시작된 첫 달, 1월의 마지막 주간이다. 난 내가 엄마인 것에 만족하고 자랑스럽다. 거칠어진 손은 관리를 못한 내 책임일 터. 일하는 엄마로서 열심인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내며 이 주간을 시작한다. 집밖에서 일하는 멋진 엄마들에게, 화이팅!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