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 없이 살았던 8세 여아
이웃주민도 아이 존재여부 몰라
친모, 살해 후 시신 일주일 방치

생전 교육·의료보험 혜택 배제
전문가 “아동학대·기본권 침해”
재발 방지·발굴 시스템 필요성
▲ 출생 신고가 안 된 A(8)양이 숨진 채 발견된 미추홀구 한 빌라 현관문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8살짜리 여자아이가 집 안에 있다는 건 벽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서 알았어요.”

18일 오전 9시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한 빌라 1층.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이곳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A(8)양이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초인종 바로 밑에는 '신생아가 자고 있어 초인종 대신 살짝 두들겨 달라'는 종이가 부착돼 있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집 안은 A양이 커왔던 흔적들로 가득했다. 옷장 문엔 빨간색과 초록색의 낙서가 그려져 있었고 서랍장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뽀로로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웃 주민인 김모(52)씨는 “옆집에서 살긴 했지만 엄마와 아이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서 본 적이 거의 없다”며 “(엄마가) 문 앞에 택배가 오면 집 안으로 가져간 뒤 상자를 버리러 가끔 나오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인종 밑에 신생아가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갓난아이가 사는 줄 알았는데 벽 너머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서 큰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출생 신고가 안 됐던 A양은 주검으로 세상에 드러날 때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앞서 지난 15일 오후 3시27분쯤 친모인 B(44)씨는 “아이가 죽었다”며 119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양은 B씨에게 살해됐다. B씨는 일주일간 아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해뒀다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일보 1월18일자 7면>

딸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A양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양이 살던 동네를 취재한 결과 B씨는 이웃 주민들과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 미용실과 편의점에서도 A양이나 B씨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관할 지자체마저 A양의 존재를 몰랐다. B씨가 생계 급여 등을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어서 지자체 모니터링 대상에 빠져 있었다.

A양이 대한민국에서 8년 넘게 의료보험 혜택은 물론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입학 등 기본적인 복지와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고 방임하는 행위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선 출생 신고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충권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생 신고가 안 된 아동 입장에서 봤을 때는 투명인간처럼 살면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아동학대라고 볼 수 있다”며 “출생 신고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을 조기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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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딸 살해·극단적 선택 시도 친모 구속 인천 미추홀구 한 주택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8살 여아(인천일보 1월15일자 온라인판 단독 보도)는 친모에게 살해됐고, 출생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인천미추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40대 여성 A씨를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그는 딸 B(8)양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앞서 경찰이 긴급체포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이날 오후 2시 인천지법에서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됐다. 윤소희 영장당직판사는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A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