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매장, 창고형 매장 등으로도 불리는 대형마트는 2차대전 후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원동력이었다. 교외에 모든 상품을 갖춘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복작거리는 도심에서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자기 차를 몰고 교외로 나들이를 가는 기분의 쇼핑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유통업자 입장에서도 땅값이 싼 교외에 매장을 열고 대량 묶음 판매를 하니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미국 월마트 집안은 수십년간 세계 부자 순위 상위권을 지켰다.

한국에서는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이듬해엔 영등포구 양평동에 회원제 할인매장 프라이스클럽이 개점했다. 당시만 해도 장보기는 남자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북지역 직장 남성들까지 양평동 프라이스클럽으로 구경을 가곤 했다. 리어카만한 카트를 밀고 다니며 뭉청 뭉청 물건들을 집어 담는 것이 가장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후 대형 할인매장은 아파트 시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생활 인프라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한국의 할인매장은 미국 등과는 달리 처음부터 교외에 자리잡지 않았다. 주로 부도심이나 신도시 등을 파고들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양극화 문제가 거론되자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됐다. 동네 전통상권을 다 죽인다는 이유에서다. 월 2회 일요일 마트 영업 제한이 시작됐으나 동네상권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마트가 문 닫는 날엔 동네 가게까지 함께 썰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식자재마트라는 새로운 유통업태가 등장했다. 규제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갈 정도로 매장 면적을 줄인 변종 할인마트다. 소비자들에 더 가까워진 식자재 마트가 코로나19 사태의 수혜까지 누리고 있는 얘기도 나온다.

▶그 잘나가던 대형할인매장들도 저물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사고 파는 일이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어서다. '창사 이래 첫 적자' 얘기가 나오더니 이제는 점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경기 안산점 등 실적이 부진한 매장 4곳의 매각에 나섰다. 그간에는 동네 상권을 지키려 대형마트 입점을 한사코 반대해 왔다. 그러나 막상 매장을 철수한다고 하니 다시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서다. 지난해 안산에서는 홈플러스 매각을 무산시키기 위해 지역사회가 나섰다. 해당 부지의 용적률을 대폭 낮추는 조례까지 만들었으나 결국엔 매각됐다. 그런데 최근 홈플러스 대전 둔산점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노조가 '매각 저지' 파업을 이어가자 사용자가 아닌, 부지 인수업체에서 엄청난 금액의 위로금을 노조에 준 것이다. 지역 정치권이 해당 부지의 용적률 유지를 보장해 준 결과라는 얘기도 나왔다. 유통업태와 마찬가지로 노동운동도 나날이 진화해 가는 느낌이다.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