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 구걸하는 영혼이 궁핍한 거지들의 세상
▲ 영화 '아푸 제1부 - 길의 노래' 중 친구 엄마가 두카를 딸의 구슬을 훔쳐간 도둑으로 의심하는 장면.

“전에 왔던 이들은 갔고, 지금은 거지들만 남았다. 낮은 이제 갈 시간이고, 밤의 망토가 덮인다. 날 태워서 건너편으로 데려가다오…”

아푸의 고모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멀리 밤하늘을 응시하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늙고 의지할 데 없는 고모할머니는 아푸 엄마로부터 갖은 냉대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아푸네 집에 얹혀산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 옛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영화 '길의 노래'(1955)는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1956), '아푸의 세계'(1959)와 함께 '아푸 3부작'을 이루는 사트야지트 레이 감독의 첫 작품이자, 최고 걸작으로 칸영화제 최우수휴먼도큐먼트상을 수상하며 인도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감독은 인도 벵골 지역의 낙후된 마을에 사는 가난한 아푸네 가족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출로 그려내어 숭고한 감동을 전달한다.

 

한 가족의 삶과 죽음을 통해 반영한 인간의 타락사

집 옥상에서 신께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던 마을 여인은 한 소녀가 자기네 과일을 훔쳐가는 걸 목격하고는 화를 내며 투덜댄다. 소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고모할머니 방 앞으로 가서 바구니 안에 훔쳐온 과일을 놓는다. 영화는 아푸가 태어나기 전 아푸의 누나 두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가난한 브라만 집안의 딸 두카는 남의 집 과일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게 나쁜 일인 줄 모른다. 머릿속에 아직 소유라는 개념이 들어서지 않은 어린 두카의 생각엔 나무에서 나는 열매가 모두 누구나 따먹을 수 있는 신의 선물인 것이다. 아득한 과거 황금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대 인도의 전승에 의하면, 세상은 사트야 유가부터 칼리 유가까지 네 시기를 거치는데 사트야 유가는 바로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가 언급한 황금시대 같은 시기이다. 그 시대의 인류는 어떠한 궁핍함이나 비참함을 겪지 않는 풍요와 기쁨이 넘치는 신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차츰 세상에 균열이 일어났고 급기야 신성을 완전히 망각하고 영혼이 타락해버린 말세 칼리 유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세는 바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칼리 유가 시대이자, 철의 시대이다. 기차로 대변되는 근대화와 물질화의 물결에 점차 물들어가는 영화 속 아푸네 가족의 모습은 바로 인류의 타락사를 반영한다. 아푸와 두카 남매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기차를 직접 목격하는 순간 아푸네 집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고모할머니의 죽음에 이어 아푸에게 충격을 안겨준 누나의 죽음은 신성을 망각한 대가로 불멸의 존재에서 필멸의 존재로 추락한 인류 역사의 비극을 반영한다. 처음엔 단지 고모할머니에게 갖다 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과일을 훔쳤던 두카가 소유욕에 잠식되어 친구 여동생의 구슬을 훔치는 순간 두카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시로 떠나기 전날 아푸는 누나 영혼의 타락을 증거하는 구슬 목걸이를 연못에 던져 수장시킨다. 그리곤 부모님과 함께 수레에 몸을 싣는다.

이제부터 윤회의 수레바퀴는 기나긴 우회로의 순환길을 따라 원점을 향해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 그리고 폐허가 된 텅 빈 집엔 비슈누 신을 태운 뱀이 잔해 속을 이리저리 바삐 유영한다. 다가올 황금시대를 준비하며…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