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내 국민학교 시절을 고봉밥으로 담고 있었다.
아버지는 답십리 언덕배기 우리집과 옆집 처마 사이에
한두 자 쯤 되는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를 키워 닭을 만들었지.
강아지도 피하던 닭똥을 치운 날에는 아버지는 닭을 잡았다.
암탉 뱃속에 노란 포도송이 알들이 산다는, 옷 벗겨진 사실을 그날 알아야 했어도
그 생닭이 삶은 닭으로 바뀌어 개다리 밥상에 오르자, 닭살 소름 다 잊고,
네 형제의 손가락은 백숙을 차지하려고 젓가락 싸움질하듯 다투었지.
아마 아버지의 고봉밥은 닭국물만 자작자작 적시고 있었을 거다.
학교 끝나서 왔는데 집이 텅 빈, 이상한 날
혼자여서 춥고 더 배고파서,
이불 사이에 숨어 있던, 고봉 밥그릇을 보물처럼 찾아내서,
깨금발로 손 뻗어 찬장에서 참기름, 깨소금, 샘표간장도 꺼내서,
아주 조금씩 표나지 않게 밥에 뿌리고 비벼서,
부뚜막에 들어온 길고양이처럼 소리 죽여 먹기도 했었지.
아버지가 하루걸러 밤새워 일하시는 날에는
어머니는 남은 김치찌개를 또 데우고,
검게 탄 누룽지를 죽처럼 끓이고,
멸치젓 비린내 삭은 깍두기만은 고봉밥처럼 퍼오고,
모자라면 찬밥도 뜨거운 물에 말아 먹기도 했었지.
고추장 종지 옆에는 마른 멸치 몇 마리가 고기인양 있기도 했었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서 만난 고봉밥 그릇과 작은 밥상은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 어머니, 네 형제를 퍼 담고 있었다.
/ 김원경 시민기자 twokal0212@naver.com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