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나는 책으로 쓰일 만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주한인 2세로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로 살아온 김영옥(1919~2005)의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퇴역 후 이민자·아동·청소년·여성·빈민 등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다. 김영옥은 그동안 잘 알려진 '전쟁영웅'을 넘어 본인이 받은 차별을 극복하고자 아시아태평양 소수계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정의로운 활동을 벌인 유명인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지난해 9월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특별전을 열었다. 박물관 측은 이처럼 해외 동포 중 그 삶과 가치를 알릴 만한 인물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마련한다. 이민사박물관 설립 이념과 맞닿아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까닭이리라.

인천은 대한민국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첫 이민자 121명(인천지역 84%) 이후 총 64회에 걸쳐 7400여명이 제물포 바다를 건넜다. 인천시에 국내 최초 이민사박물관이 2008년 6월 문을 연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인천의 대표 명소 월미도를 품은 월미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개척자적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려고 시민과 해외 동포들의 뜻을 모아 건립됐다. 이민사박물관은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700만 해외 동포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숨을 쉬는 공간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4개 전시실을 갖췄다. 이민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 인천의 정세와 이민의 배경이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제1전시실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하와이의 상황, 최초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출항한 선박 '갤릭호'의 모형 등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담았다. 제2전시실에선 우여곡절 끝에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개척자로서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발자취를 사진 자료와 유물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고된 사탕수수 농장의 생활을 담은 영상과 하와이 한인학교를 연출한 교실 등이 그 때의 생생함을 더한다. 제3·4전시실엔 지구 반대편 중남미로 떠난 한인들의 또 다른 삶과 조국 광복을 위해 머나먼 타향에서 온몸을 바쳤던 활약상, 가혹한 노동 환경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이 갖고 있는 정체성 중 하나는 '디아스포라'이다. 인천에서 우리나라 공식 이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민자 대부분이 마지막으로 밟은 조국의 땅이 인천이기도 하다. 디아스포라는 '분산·이산'이란 뜻을 품은 그리스어로, 인천이란 도시 이미지와도 걸맞다. 인천은 개방성과 다양성에서 만큼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앞서 있지 않나. 태어난 곳을 따지기보다는 '여기·지금'을 더 중시하는 데가 인천이다. 그래서 이민을 주제로 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인천에서 개관한 일은 자연스럽고 운명적이다. 퍽 '인천다운' 일이다.

이문일 논설위원